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5.12.11 15:20

지난 9일 마지막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끝내 중요 쟁점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또 다시 ‘개점휴업 국회’, ‘식물국회’ 등의 비판 여론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여당이 과반 다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어김없이 ‘국회선진화법’ 책임론이 불거져 나왔다.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10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인제 의원, 심재철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은 당장 국회선진화법을 손 봐야 한다며 ‘위헌론’ 등을 제기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국회법정상화 TF’를 꾸리는 등 조직적 차원의 대응을 하고 있으며 올해 초에는 헌법재판손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다수당의 폭압이라며 국회선진화법 옹호론을 펴고 있다. 다만 야당 역시 예산안과 관련해 불리한 입장이어서 예산정국이 도래할 때마다 여당의 국회법 악용 소지를 문제삼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말 국회선진화법이 오늘날 법안처리가 지연되거나 중요 법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해 폐기되는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5가지 문답을 통해 최근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비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자. 

➀ 국회선진화법이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국회선진화법이란 개별법의 이름이 아니다.

지난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을 일컫는 말이다. 계속되는 폭력국회, 날치기 통과 등의 폐단을 예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개정안은 2011년 여야 소장파 의원들에 의해 제안됐고 1년여 간의 논의 끝에 18대 국회 막바지에 다다라 통과됐다. 

➁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

규정상으로는 여전히 국회의장에 의한 법안 직권상정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없이는 사실상 직권상정이 어렵게 돼 있다고 볼 수 있다. 

18대 국회의 경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97건에 달해 여당에 의한 단독처리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국회선진화법은 이 같은 병폐를 막기 위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경우를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와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제한했다. 한중FTA 비준동의안과 주요 쟁점법안 상정시 정의화 의장이 여야 원내대표를 만나 설득을 벌였던 것도 같은 이유다. 

한편 여당이 양당 합의를 거치지 않은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무산된 바도 있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 간 이견으로 법안처리가 지연됐다. 그러자 당시 새누리당은 정부 조직이 꾸려지지 않은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볼 수 있다며 의장에 의한 직권상정을 요청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③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법안처리가 안 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국회선진화법 제도 하에서도 얼마든지 법안처리는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다수당에 의한 단독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해 소수당이 반대하는 한 법안이 처리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질문과 관련된 문제가 바로 의결정족수다. 반대론자들은 국회선진화법상이 법안처리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과반이 아닌 5분의 3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소수당에 의한 반대로 국회가 마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규정상으로만 보면 여전히 법안 처리에 대한 의결정족수는 과반이 맞다. 개정된 국회법상으로도 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의 동의만 있으면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만약 반대하는 실질적으로는 다수당에 의한 단독 처리가 불가능하도록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다. 소수당이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제도, 이른바 ‘필리버스터’ 제도를 활용하면 법안 처리는 불가능하다. 토론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임위 심사 기간을 제한하는 ‘안건신속처리제’, 법사위 심사를 뛰어넘고 본회의로 바로 상정되도록 하는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지연법안의 본회의 부의제도’ 등을 활용하기 위해서도 5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물론 19대 국회에서 무제한 토론종결제도, 안건신속처리제, 법사위 지연법안 부의제 등을 실천에 옮긴 정당은 없다. 하지만 해당 제도들이 있는 한 다수당은 애초부터 단독처리를 추진할 수 없고, 소수당이 반대하는 한 법안은 통과될 수 없어 사실상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규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④ 그렇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위헌인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상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규정한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라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4년 9월에는 국회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올해 1월에는 국회가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상황에서 헌법상 다수결의 원칙을 훼손했다며 권한쟁의 심판이 청구됐다. 하지만 아직 헌법재판소는 이렇다 할 판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위헌여부에 대해서는 정치권,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 등마다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 헌법 제4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표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헌론자들은 국회의 입법행위가 중대한 헌법적 행위인만큼 과반수 찬성 원칙이 말 그대로 ‘원칙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반대측은 헌법에 의한 입법부 재량 인정을 근거로 국회선진화법을 위헌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결국 ‘결자해지’하는 차원에서 국회가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각종 소송 청구가 제기 된지 180일이 지났지만 정치적 민감성, ‘정치의 사법화’ 우려 등으로 입장을 아끼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⑤ 새누리당, 추진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반대한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합의에 의해 처리됐으며 추진 과정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 홍정욱 전 의원 등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오늘날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소장파 의원들로 결성된 ‘국회자정 모임’이 이른바 ‘몸싸움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하자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없애자고 하느냐”라는 비판은 상당 부분 유효하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보완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고, 2012년 4월 총선 이후 새누리당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야당과 소장파 의원들이 “총선을 이기고 나니 입장이 바뀐 것이냐”고 압박하자 결국 여야가 법안을 처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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