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11 11:14
청나라 최고 부자였던 호설암(胡雪巖)의 초상. 중국 강남 출신으로 소금판매와 금융업을 통해 부를 쌓은 인물이다. 특징은 철저하게 관의 인맥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요즘 중국 경제의 활황세를 이끌고 있는 강남 지역 출신 경제계 인사들도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반부패 사정대 위에 오르고 있어 관심을 끈다.

먼저 시 한 수 소개한다. 당나라 시인으로서 매력적인 탐미주의적 시풍으로 유명한 이상은(李商隱)의 작품이다. 다른 그의 작품에 비해 시의 내용이 쉽고 아름답다. 이 시인이 저녁 무렵에 감성이 도졌다. 수레를 몰아 오른 곳은 예로부터 유명한 벌판.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며 이렇게 읊었다.

 

“저녁 무렵에 마음이 편치 않아(向晩意不適),

수레 몰아 옛 벌판으로 올랐다(驅車登古原).

노을은 가없이 아름답긴 하지(夕陽無限好),

그러나 역시 지는 해일 뿐이네(只是近黃昏).“

 

마지막 두 구절은 아주 유명하다. 지금까지 중국인들이 쉽게 입말에 올릴 정도다.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노을은 곧 사라지는 운명이다. 장엄하게 서녘 하늘을 물들이지만 그 생명은 짧다. 그럴 듯해보여도 모두 사라지고 마는 모든 것에 관한 애조(哀調)를 담은 표현이다.

중국에 서산회(西山會)가 있었다. 최근까지의 상황이다. 중국 서북부의 산시(山西) 출신으로 베이징의 정치권력 중심에 섰던 고관, 그 지역 출신으로 각종 사업을 벌여 거부(巨富)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의 기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 전체를 휘감을 정도였다.

그러나 3년 전 권력 정상에 오른 시진핑(習近平)의 반부패 척결 의지에 따라 이들 서산회의 구성원은 추풍의 낙엽처럼 굴러 떨어졌다. 대표적인 사람이 시진핑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의 비서실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링지화(令計劃)다.

그를 정점으로 맺어졌던 서산회는 이미 신세가 처량하다. 중국의 정계와 경제계의 실력자로 부상하던 그룹이 이제는 섬돌 밑에서 단죄를 기다리는 계단 아래의 죄수, 즉 계하수(階下囚)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나라 때 시인 이상은이 이 점을 미리 간파했을까. “노을이 아름다워도 지는 해 일뿐”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마침 그 이름도 서산(西山)이라는 점이 참 공교롭다.

서산회 관련 소식은 이제 구문(舊聞)이다. 이제는 강남회(江南會)가 사람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馬雲)이 중심이다. 강남회는 동남부 저장(浙江)의 항저우(杭州)에 있다.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강남회는 저장성 출신의 경제계 인사들이 주축이다. 물론 인근의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펼쳐진 정치적인 인맥과 틀림없이 가까우리라 보인다. 그럼에도 알리바바 마윈이 상징하듯이 IT와 금융, 부동산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남부경제의 주요 인맥들이 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엊그제 중국에서는 매우 눈에 띄는 뉴스가 나왔다. 상하이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금융과 부동산 업체 푸싱(復星) 그룹 궈광창(郭廣昌) 이사장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중국의 워렌 버핏’으로 불린다. 투자의 귀재라는 점 때문이다. 중국 11위 부자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팽창한’ 부호, 즉 暴富(폭부)의 대명사다.

그 역시 저장성 출신으로 강남회를 이루는 주요 구성원의 하나다. 중국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은 좋지 않은 징조다. 당국의 조사를 받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진핑의 반부패 칼끝이 이제는 강남회에 본격적으로 겨눠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남회 클럽하우스는 서산회의 몰락 뒤인 2014년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 역시 하나의 조짐이었다. 그에 이어 주요 구성원이자 중국 경제계의 대표적인 인물인 궈광창의 ‘실종’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남회의 다른 멤버들의 앞날에까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경제계의 가장 큰 특징은 관(官)과의 관계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관을 끼고 일어서야 크게 일어서며, 그를 토대로 발전해야 덩치를 크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 관원의 비리를 캐다가 결국 기업 총수의 비리까지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높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강력한 힘은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주효했다. 그러나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끼리 주고받는 뇌물과 금전은 불투명한 거래와 타협 속에서 덩치를 불리게 마련이다. 서산회의 몰락이 그렇고, 강남회의 미래도 그럴지 모른다. 서산에 퍼졌던 노을이 강남도 집어삼킨 모양이다.

강남에 지는 노을이라….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 그 대신 강남은 봄의 기운을 먼저 말하는 곳이다. 그곳의 형편이 기울 때는 지는 꽃을 앞세운다. 흐르는 물에 떨어지는 꽃, 낙화(落花)에 유수(流水)다. 그렇게 중국 강남의 봄도 지려는가. 중국의 이런저런 풍경이 어딘가 퍽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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