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수정 기자
  • 입력 2018.03.10 10:39

[뉴스웍스=이수정 기자] 2017년 3월 10일 오전 전 국민들의 시선은 TV로 집중됐다. 

오전 11시 21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담담한 목소리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운한 역사가 새겨졌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핑크 헤어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관련 선고가 있던 날, 이정미 권한대행은 이른 아침 핑크색 헤어롤 두 개를 미처 떼어내지 못한 채 출근했다. 

이 장면은 당시 취재진에게 포착돼 이슈가 됐다. 어찌 보면 실수로 빚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시민들은 이를 그의 일에 대한 열정으로 풀이했다.

일각에선 이 권한대행의 헤어롤을 헌법재판소에 영구보관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머리에서 헤어롤을 미처 떼어내지 못한 채 출근하고 있다. <사진=YTN방송캡처>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핑크색 헤어롤을 패러디한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김미화 SNS>

미국 AP통신 등 외신도 핑크색 헤어롤 두 개를 얹은 이 권한대행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한국인 여성 재판관이 자기 일에 헌신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서 "이 권한대행의 모습은 아시아권 국가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순간이 됐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지적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제20차 촛불집회 참가자 다수는 머리에 핑크색 헤어롤을 붙이고 시위에 참여했다. 또한, 개그우먼 김미화 등 셀럽들도 SNS에 헤어롤을 감고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환호…유행어까지 

파면선고 대목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라는 주문이 읽히는 순간 탄핵 지지자들의 눈동자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가 떨어지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해당 주문은 지난해 유행어 2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국민의 뜻이 모여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사실상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 지지자 '태극기집회'…법치주의 장례식 거행

2017년 3월 10일 오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 헌재 앞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SBS방송캡처 >

반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선고 당일 "탄핵을 인정할 수 없다"며 격분했다. 이에 집회 참가자로 추정되는 시민 2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도 발생했다.

당시 정관용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대변인은 "헌재 8인 평의회 결정은 그 자체로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재가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린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은 지난해 3월 11일 오후 시청역 대한문에서 '법치주의 장례식'을 치렀다.

<사진=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이들은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사망했다. 이 참혹한 심정을 이겨내고, 법치주의를 살려내야 한다"며 "그대는 자랑스러운 애국자. 여기가 최후의 보루다. 우리마저 흔들리면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1700만 촛불시민…독일 '인권상' 받다

2017년 3월 11일 촛불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축하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일자 : 2017년 12월 5일) <사진=KBS방송캡처>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불러온 촛불시위는 외신에서도 연일 보도되며 화제를 모았다. 

특히 지난해 12월 5일 독일의 권위 있는 인권단체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2017 에버트 인권상'을 1700만 한국 촛불시민에게 수여했다. 이는 1994년 인권상이 만들어진 이래 특정인이나 단체가 아닌 국민이 수상한 첫 사례가 됐다. 

에버트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구성요소이며 한국 국민의 촛불집회는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당시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장애진 단원고 졸업생이 촛불시민들 대표해 수상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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