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16 11:20

총 21가지 요구안 사측 전달…수용 가능성 '비관적'

임한택(가운데)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지부장 등 조합원들이 지난 15일 저녁 부평공장 내 본관동 앞에서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한국지엠 노조가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픽업트럭 등 8개 차종의 국내생산 확약을 요구했다. 또 한국지엠이 개발한 차종들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넘겨달라는 요구도 더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노조는 지난 15일 부평공장에서 열린 대의원대회를 통해 금속노조의 지침인 5.3% 임금인상 요구안을 폐기하고 임금동결을 결정했다. 또 지난해 성과금 역시 사측에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노조는 이날 대의원대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영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결단으로 올해 임금인상 및 지난해 성과급 지급요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은 30만 노동자들의 고용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는 임금인상 관련 요구와 더불어 군산공장 폐쇄 철회와 신차 투입 계획을 비롯한 총 21가지의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다.

특히 눈길이 가는 점은 신차생산 확약과 지적소유권 요구다. 노조는 CUV 신차, 트랙스 후속, 말리부 후속, 스파크 후속, 다마스 후속, SUV 모델인 에퀴녹스와 트래버스, 픽업트럭 콜로라도 등 총 8종의 국내생산 확약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GM 본사의 사업 비전인 전기차 등 미래차 또한 한국지엠이 개발하고 우선생산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GM이 이 같은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지는 안개 속이다. GM은 이미 미국과 중국의 사업장을 제외하고 다른 글로벌 사업장들은 정리하고 있는데다 현재 한국지엠이 생산하고 있는 차종들은 대부분 판매부진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애초에 GM이 약속한 트랙스 후속과 CUV를 제외하면 다른 차종들을 한국지엠이 생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올해 한국에 들여올 중형 SUV 에퀴녹스는 물론이고 대형 SUV 트래버스, 미국 전용 모델인 픽업트럭 콜로라도의 생산은 시장성이 낮아 무리라는 주장이다.

특히 GM본사가 한국지엠에 지적소유권을 순순히 내줄지도 물음표가 달린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한국지엠이 국내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차종의 대부분은 한국지엠이 개발했다. 주력모델인 스파크와 트랙스, 볼트EV를 비롯해 1년 만에 국내서 단종된 올뉴크루즈, 아베오, 캡티바, 올란도, 다마스, 라보 등 총 9종의 모델이 모두 한국지엠의 손에서 탄생했다. GM 본사에서 들여온 차종은 말리부, 임팔라, 카마로 등이 전부다. 한국지엠은 국내 시장이 아닌 GM의 글로벌 차종 개발에도 다수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GM은 지난 구조조정 사례로 볼 때 본사의 지적재산권을 넘겨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의 사브자동차는 지난 2000년 GM에 편입된 뒤 2009년 GM 본사의 파산으로 매각이 결정됐다. GM은 중국 베이징자동차가 사브의 지적재산권 및 생산설비 인수를 시도하자 이를 거부했고, 결국 네덜란드 스포츠카 업체인 스파이커가 생산설비만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GM이 사브 브랜드와 플랫폼을 넘겨주지 않아 판매 부진에 빠졌고 지난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위원은 ‘철수론 이후 한국지엠의 대안’ 보고서에서 “한국지엠은 현재 어떤 지적재산권이나 상표권도 가지고 있지 않아 현재 생산 중인 차종들의 플랫폼부터 디자인까지 모두 본사 소유”라며 “만약 GM이 한국에서 철수하게 되면 새 인수자 선정에 매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 연구위원은 “중국 등 신흥국들이 한국지엠을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사브 사례에서 보듯 물리적 설비만 인수할 수 밖에 없다”이라며 “매각 협상 과정에서 상표권, 플랫폼, 핵심부품 공급, 판매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불리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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