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윤 기자
  • 입력 2018.03.24 04:58

[뉴스웍스=박지윤 기자] 올해 초부터 '미투(#MeToo)' 운동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미투 운동이 고발하는 주요 내용은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의 성범죄가 핵심적이지만 모두 갑과 을, 즉 '위력을 이용한 범죄'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최근 건설업계에 대형건설사들이 하청업체와 재건축 조합원, 입주민 등에 위력을 이용한 갑질을 일삼아온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권에서 재건축되는 아파트 5곳에 대해 정부 기관이 점검을 했더니 시공사들 모두 수억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무상옵션을 공사비에 은근슬쩍 끼워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5곳 아파트의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은 현대건설(반포주공1단지1·2·4주구), 대림산업(신동아아파트, 방배6구역), GS건설(방배13구역), 대우건설(신반포15차아파트)로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건설사들이다.

지난해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시공사 선정을 서두르면서 대형건설사들 사이에 치열한 수주 경쟁이 벌어졌다. 대형건설사들은 앞다퉈 수백억~수천억 원의 무상옵션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하며 재건축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불꽃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 5곳 재건축 단지의 모든 시공사들이 시공사 입찰 과정에서 제시한 무상제공 사항을 유상으로 공사비에 끼워 넣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라는 재건축 최대어를 수주한 현대건설은 이 단지에 무상으로 달아주기로 한 품목비용 약 5026억원을 공사비에 포함시켰다.

대림산업은 신동아 아파트에 천정형시스템에어컨과 발코니 확장 등 20개 무상품목 약 232억원, 방배6구역에는 행주도마살균기와 현관 스마트도어록 등 19개 무상품목 약 109억원을 공사비에 포함시켰다.

GS건설은 방배13구역에 전력 회생형 엘리베이터 무상품목비 약 7600만원을, 대우건설은 신반포15차에 전기차충전기설비와 무인택배시설 등 110개 무상품목비용 약 56억원을 공사비에 넣었다.

<그래픽=뉴스웍스>

또 한 대형건설사 현장에서 현장소장이 하청업체에 수억원대의 금품이나 고가차량 상납을 요구한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 20일 대림산업 현장소장 두명이 하청업체로부터 건설사업과 관련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 전 대표 등 9명이 불구속 입건된 것. 

피해를 고발한 하청업체 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대림산업 현장 직원들이 설계 변경을 대가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다음 공사에 참여시키지 않거나 점수를 낮게 매겨 입찰에서 제외시키고 등록을 취소시키는 보복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한 직원은 자신의 자녀에게 BMW차량을 선물할 것을 요구하고, 고위 임직원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1억원을 내라고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대형건설사들의 갑질은 다른 건설현장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청업체 대표는 강조했다.

이밖에도 부영주택은 지난해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아파트 A23블록 등을 부실시공해 입주민 하자 신청이 8만 건을 넘어섰는데도 하자보수를 제 때하지 않으면서 비판을 받았다. 

부영은 지난달에도 경주시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서 건설하는 아파트 단지에 철근 시공을 누락시키는 등의 문제가 적발돼 벌점 30점과 3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이미 시공을 맡아 조합에게 잘보일 필요가 없는 건설사가 무상옵션으로 제시했던 비용을 공사비에 슬쩍 끼워넣고, 사업의 입찰권을 놓고 하청업체에 수억원의 금품을 요구하는 등의 도 넘은 갑질들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상태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갑질을 고발하는 하청업체들은 거의 없다. 을의 입장인 하청업체들은 사업 입찰권이나 공사 발주권을 쥐고있는 건설사들과의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갑질을 참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갑의 입장인 대형건설사들과 을의 입장인 하청업체, 조합원, 입주민 등 모두 '미투'를 외쳐야 한다.

먼저 건설사들의 갑질에 피해를 입은 하청업체나 조합원 등은 '나도 당했다'며 부당한 요구를 받은 실태를 낱낱이 사회에 고발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후한이 두려워 이들의 갑질을 눈감아서는 안되며 비리가 만연한 건설사들이 심판받고 처벌되게 함으로써 앞으로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다.

건설사들은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바꾸겠다’는 자체 미투가 절실하다. 건설사들 스스로 도넘은 사내 갑질 행태를 뿌리뽑기 위한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어느 건설사들이 흠을 스스로 인정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읍참마속'이라는 고사성어처럼 갑질하는 임직원들을 과감히 자르고 비리를 척결하는 단호함이 오히려 기업 이미지와 사업수익성을 높이는 단초가 될 것이다.

회사의 이미지가 브랜드 신뢰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금품 상납, 부실 시공 등의 비리가 없다는 깨끗한 이미지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미투 운동이 건설업계로도 확산돼 건설사들의 갑질 행태을 낱낱이 파헤치고 비리를 척결하는 결실을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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