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23 09:43

영구면제는 한미FTA와 연계...자동차 내줘야 할 판

8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업계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트럼프 SNS>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한국이 미국의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 조치를 일단 피했다. 다음달 말까지 잠정 유예하기로 한 만큼 시간은 벌었지만 업계의 불확실성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협상 결과에 따라 다시 관세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현지시간) 미 상원 재무위 청문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정무역의 영구적인 해결책을 찾는 협상 과정에서 일부 국가들에 대한 철강 관세 중단을 승인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번에 한국은 유럽연합(EU),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철강 관세 면제국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미국은 나프타 협상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면제국으로 지정했었다.

미국 워싱턴 DC에 체류하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국내 언론들에게 “미국 정부의 철강 232조 조치와 관련한 잠정 유예를 4월 말까지 받은 것"이라며 ”잠정유예를 받은 국가들은 조건 협상을 하기 때문에 우리도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불확실성에 따른 업계의 불안감은 여전한 상황이다. 세아제강, 휴스틸, 넥스틸 등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관세 부과 시 마땅한 대안 시장이 없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업계 관계자는 “잠정 유예 조치를 받았을 뿐 아직 면제를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만약 관세 부과가 현실화된다면 미국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은 사실상 수출길이 완전히 막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수출 시장이 상대적으로 다변화돼 있는 ‘철강 빅3’인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이번 조치에 대해 급한 불은 껐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발 관세 폭탄이 다른 주요 수출국들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과 EU는 이미 자국 내 공급과잉이 심하기 때문에 이번 미국의 조치를 핑계로 보호무역을 강화할 수 있다”며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무역전반이 악화된다면 우리나라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우리정부와 미국 간 협상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여 우려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특정 제품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품목 예외 신청을 서두른다는 방침이지만 미국 상무부가 이에 대한 심사를 마치기까지 최대 3개월 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재 한미 FTA 개정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이를 소화전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FTA 개정협상을 통해 관세를 영구 면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이 이번 관세 부과 유예국에 한국을 넣은 것도 한미 FTA 협상에서 만족할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날 김현종 본부장은 사견을 전제로 “잠정유예 된 나라들 상당수가 대미 무역적자를 보거나 철강 반제품 위주의 수출국이라 유예 대상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은 대표적인 대미 무역 흑자국인 데다 철강 완제품을 주력으로 수출하는 나라지만 캐나다,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벌이고 있어 이를 철강 관세 면제와 연계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한미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원하는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을 내주고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협상을 시도할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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