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25 06:00

의지 있지만 문제는 '돈'…공정위 이달 지나면 '칼날' 들이댈듯

현대자동차 양재동 사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언급한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정기주총에서도 별다른 개선안을 내놓지 않았다. 공정위는 현대차가 3월 안에 자발적인 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규제의 칼날을 꺼내들 것으로 추측된다.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취임 초부터 “순환출자가 총수 일가 지배권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그룹 뿐”이라고 지적하며 지난해 연말을 자발적 개혁의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해가 지나도록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공정위는 정기주총이 열리는 3월로 시한을 연기했다.

문제는 현대차가 올해 정기주총에서도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2차 데드라인을 밝히며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가 변화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기대와는 달리 현대차그룹은 지난 16일 열린 현대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현대위아 등 주요 계열사의 정기 주총에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안건은 상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날 주총에 참석한 주주가 순환출자구조 개선안을 요구했으나 현대차는 이를 외면했다. 현대차 주총에 참석한 한 소액주주는 "현대차 지배구조가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어 정부에서 해소하라는 압력이 있는데 대책은 없는지 이야기해달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주총 의장을 맡은 이원희 현대차 사장은 "주총에서는 상정된 의안에 대해서만 얘기하도록 돼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주총 의안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처럼 주총에서도 지배구조 개선안이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현대차가 데드라인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공정위가 직접 철퇴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바탕으로 경영이 유지되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의 최대주주(지분율 20.78%)이며 현대차는 기아차의 지분 33.88%를 갖고 있다. 

또 다시 기아차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의 지분을 각각 16.88%와 17.27%씩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제철은 현대모비스 지분 5.66%를 갖고 있어 복잡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돼 있다.

업계는 현대차그룹이 서둘러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글로벌 시장의 실적 부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시장 환경이 급속히 변화되고 있는데도 계열사 간 의존도가 높아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해법으로 롯데‧SK‧LG 등과 같은 ‘지주사 전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가 올 연말에 지주사 전환 혜택을 끝낸다는 점에서 현대차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지주사를 통해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순환출자 해소를 어떻게 동시에 실현하느냐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3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한 후 3개 회사의 투자부문을 합병하는 안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그룹 내 핵심 계열사들의 비용지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데다 지주사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분율도 20% 이상으로 증가해 경영권 승계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순환출자는 한 계열사가 흔들리면 그룹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에 순환출자고리를 끊어야 체력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도 “지주사 전환에 약 6조원 가량이 소요될 텐데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공정위는 올 상반기까지 다른 부처들의 제도 정비와 대기업들의 ‘셀프 개혁’ 노력을 지켜본 뒤 하반기에 구체적인 행동 개시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기다린 후 개선 노력이 없다면 해소해야 할 순환출자범위 확대와 금산분리 규제강화 등 입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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