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26 10:07

픽업트럭 등 시장개방 확대…철강 관세폭탄 제외

<그래픽=뉴스웍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올해 초부터 시작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이 약 3개월 만에 사실상 타결됐다. 우리 정부는 픽업트럭 등 자동차 일부를 내주는 대신 철강과 농업을 지키며 실리를 챙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픽업트럭은 우리 주력 차종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국은 이르면 이달 안에 협상 타결을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을 하고 돌아온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한미 FTA 개정협상이) 원칙적으로 타결됐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이번 합의를 통해 얻은 것은 크게 5가지”라며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해 우리 (철강)업계가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몇 가지 기술적 이슈로 아직 최종적인 개정안이 도출되지는 않았으나 곧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히 “농업의 추가 개방을 막았고 자동차 부품의 의무사용과 원산지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기존 양허 후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우려했던 ‘일방적 양보’가 아닌 기존 관세철폐 품목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적절히 방어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 기업들이 이번 협상과정에서 가장 걱정했던 시나리오는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부활이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관세 부활’을 막아내는 대신 픽업트럭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국 픽업트럭 시장 보호를 위해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폐할 예정이던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픽업트럭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핵심 차종이다. GM과 포드 등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픽업트럭에 대한 경쟁력은 일반 세단과 SUV 차종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 유럽, 한국 등 외국산 공세에 맞설 가장 확실한 카드가 픽업트럭이라는 이야기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과 마이클 비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보 등 한미 양국 정부대표단 30여 명이 지난 1월 3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한미 FTA 제2차 개정협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모델은 단 한 차종도 없다. 쌍용차가 우리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렉스턴 스포츠’를 만들어 팔고 있지만 미국시장에는 판매되고 있지 않다. 현대차도 지난 2015년 픽업트럭 ‘싼타크루즈’의 콘셉트카를 발표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양산 계획이 잡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픽업트럭이 우리 자동차 산업의 주력 차종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픽업트럭을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관세부과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이 예상되지만 미국 수출차종이 없어 타격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셈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비관세장벽이라고 주장했던 국내의 수입차 환경·안전 기준 완화 요구도 수용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내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미국 기준을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는 쿼터를 기존 업체당 2만5000대보다 더 확대하는 것이다.

이 같은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충분히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은 소비자들의 입맛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경쟁력이 유럽차에 비해 떨어지는 미국차는 흥행하기 힘들다”면서 “쿼터가 늘더라도 미국차 수요는 한정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미국이 요구한 자동차 시장 수출 규제 완화는 무역수지에 그다지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며 “산업구조 특성상 자동차를 일부 양보하고 철강을 얻는 것은 우리 쪽 이득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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