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3.26 15:43

농산물·자동차 부품시장 지켜...철강 수출물량은 일부 축소키로

<그래픽=뉴스웍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FTA 개정 협상을 최종 타결하면서 우리 산업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 우리나라는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 관세부과 조치에서 면제받는 데 성공했다. 서로가 원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중 집중적인 한미 FTA 개정협상을 진행한 결과 원칙적인 합의가 도출됐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은 미국의 철강 관세부과 조치에서 한국을 국가 면제하는 대신 지난 2015 ~ 2017년 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쿼터를 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가 면제 조기 확정으로 25% 추가 관세없이 2017년 대미 수출량인 362만톤의 74% 규모에 해당하는 수출 물량을 확보했다”며 “우리기업들의 대미 수출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자평했다. 

품목별로는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하나인 판재류의 경우 지난해 대비 111% 쿼터를 확보했다. 다만 유정용강관 등 강관류 쿼터는 지난해 수출량 대비 큰 폭의 물량 감소가 예상된다. 우리 기업들은 지난해 미국에 203만톤의 강관을 수출했으나 올해부터는 104만톤 밖에 수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물량 감소에 따른 미국의 철강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3월 176.4를 기록했던 북미 철강재 가격지수는 올해 2월 209.3으로 18.6%나 올랐다.

우리나라는 철강 관세 면제국으로 인정받는 대신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기간 연장,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에서의 일부 유연성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기간을 현재의 10년차 철폐2021년)에서 추가로 20년(2041년)을 더 연장했다. 앞으로 포드‧GM‧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제조사별로 연간 5만대까지 미국 현지의 안전기준으로 준수하면 한국의 안전기준도 준수한 것으로 간주된다. 기존 2만5000대였던 안전‧환경기준 미충족 차량에 대한 수입쿼터가 두 배 규모로 늘어났다.

이 밖에 미국 측의 요구사항이었던 글로벌 혁신신약의 약가제도와 원산지 검증 관련 규제도 한미 FTA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선‧보완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와 관련한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냈다.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투자자의 남소방지와 정부의 정당한 정책권한을 합의했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특정 국가의 비합리적인 법에 억울하게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정부의 공공 정책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거액의 배상을 노리는 민사소송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특히 우리 정부는 농축산물 시장 추가개방과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등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분야에서 방어에 성공했다. 필요한 수준에서 서로 간의 요구를 들어주며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사진=김현종 SNS>

이 같은 협상 결과에 대해 통상 전문가들은 ‘최선의 결과’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국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부딪혔다면 승패가 갈리겠지만 이번 협상은 서로가 다른 요구를 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윈-윈한 결과”라며 “미국은 수입산 철강의 물량을 63%까지 줄이는 것이 목표인데 쿼터를 70%까지 확보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강관 수출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제품 가격이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물량이 줄어도 수익성은 오히려 향상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철강 추가 관세가 부과됐다면 연간 17억달러 가량의 손실이 예상되는 만큼 관세 면제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최우선이었다”면서 “우리 정부는 FTA 자체만 놓고 보면 방어에 주력했으나 철강까지 더해진 패키지로 보면 상호 호혜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협상 결과가 국내 자동차 산업에 미칠 악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려됐던 미국산 자동차 부품 의무 사용을 수용하지 않은 데다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기간 연장도 우리 산업의 큰 타격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100원 버는 것을 50원으로 줄이라고 할까봐 걱정했는데 애초에 미국에서 픽업트럭으로 버는 것이 없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대기아차는 픽업트럭 모델을 갖고 있지 않고 유일한 한국산 픽업트럭을 판매 중인 쌍용차는 북미 진출 계획이 아직 없는 상태다. 미국은 자국 자동차 시장의 최고 인기 모델인 픽업트럭에 대해 일괄적으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경쟁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국 업체들을 수입차의 공세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방어수단인 셈이다. 한미 FTA 체결 전까지 미국의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는 유례가 없었던 만큼 관세 철폐 기간 연장 요구는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현대기아차가 픽업트럭을 개발하더라도 앨라배마주와 조지아주의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면 이 마저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교수는 쿼터가 과도하게 늘어난 것에 대해 경계했다. “미국차는 국산차보다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문이 더 열려도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면서도 “구멍이 너무 커지면 규제에 대한 무용론이 나올 수도 있고 유럽에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내비쳤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