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재갑 기자
  • 입력 2018.03.28 11:16
한재갑 기자

[뉴스웍스=한재갑 기자] 하늘 길은 철저하게 국가가 관리한다.

국토교통부는 ‘항공사업법’, ‘국제항공운수권 및 영공통과 이용권 배분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항공사 인가를 하고 있다. 인가 때는 자본금, 항공기 및 인력확보 등 까다로운 요건을 통과해야 한다. 재무상황이 악화되거나 국민안전이 위협받을 우려가 있으면 퇴출로 이어진다.

노선 배분도 마찬가지다. 운수권 배분 평가기준에는 운항 정시성, 피해 구제성, 안전성 등 항공교통서비스 평가 결과에 따라 각 항공사에게 노선권이 배분된다. 이 또한 안전위원회의 평가 결과에 따라 노선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이는 항공노선이 국가와 국가 간 협약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공이라는 공공의 자산을 국가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해 공공의 이익을 최대한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땅의 길은 어떤가.

보이지 않는 하늘 길과는 달리 국민들이 밟고, 달리는 땅의 길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버스노선은 사유화돼 있다. 거의 대부분 버스가 면허의 기한규정이 없는 ‘일반면허제’로 운영되면서 버스노선은 민간사업자의 권리와 재산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버스노선 사유화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가 남겨놓은 버스업체를 민간사업자가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았다. 이후 버스업체들은 산업화, 도시화 과정 속에서 거대자본이 되었으며, 군부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공고화 되었다.

이 당시에는 관료, 경찰, 군인 출신들이 이권사업으로서 버스사업에 뛰어 들면서 버스자본가로 변모했다. 정부는 버스자본의 이해에 반하는 버스공영제보다는 버스민영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쳤다.

공공부문 민영화는 정부가 특정 민간업자들에게 사업권을 불하하되,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사업권을 갱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 인허가다.

공공자산인 방송용 주파수와 유선을 사용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방송내용 심의를 받아야 한다. 심의 결과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주파수 및 유선 사용을 불허할 수 있다.

독일은 자국의 여객운송법에 자동차를 이용한 노선교통의 허가유효기간을 최대 8년으로 정하고 있다. 노선입찰제와 민간위탁제 등을 채택하고 있는 국외 여러 나라들도 버스노선은 정부가 소유하고 있으면서 특정노선에 대한 운영계약에 기간을 두고 민간업체들에게 불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버스사업은 업체들이 사업면허를 자진해서 반납하기 전까지는 사실상 버스사업을 영구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버스노선이 공공재산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버스 업체끼리 면허와 버스노선을 재산처럼 마음대로 사고팔기까지 한다. 버스업체들은 버스노선을 볼모로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요구하고, 또한 보조금 횡령과 각종 비리들을 양산하고 있다. 오죽하면 ‘버피아’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까.

무엇보다 국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버스업체들은 알짜배기 노선에서 최대의 수익 창출을 위해 노선을 최대한 늘인다. 제대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운전기사들은 쉼 없이 버스운행을 해야 한다. 오늘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달리는 흉기’가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버스’는 온다.

6·13 지방선거 바람이 불면서 여지없이 버스 관련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가 오는 4월부터 경기도의 광역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한다고 밝히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들과 경기도의회는 비난을 쏟아내며 ‘승차 거부’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준공영제 시행의 필수 요건인 정산·평가시스템도 완비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버스준공영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졸속 시행을 지적한다. 남경필 지사가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서둘러 본인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의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지난 선거 때도 ‘버스’는 왔다.

2014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한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현 교육부 장관)은 버스공영제 시행을 주장하면서 이른바 ‘무상버스’ 논쟁이 불거졌다. 이는 무상급식의 제 2탄으로 인식되면서 급기야 버스논쟁이 복지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민 안전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버스논쟁의 핵심은 사유화된 버스면허와 노선을 공공재산으로 돌려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외면한 버스논쟁이 왠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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