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4.05 05:14

실적부진에 임원 연봉삭감·직원 희망퇴직...노조 강력반발

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동 사옥. <사진=현대차그룹>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잇따라 악재를 마주하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경쟁력 하락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경영진 연봉 삭감은 물론 부장급 이상 희망퇴직까지 받았다. 게다가 야심차게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안은 노조 반대에 이어 미국 펀드사 엘리엇까지 반기를 들면서 더욱 불확실성에 빠져들게 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29일 50번째 생일을 맞았지만 별 다른 행사 없이 조용히 넘겼다. 실적이 뒷걸음질 치고 있는 데다 당시 임단협 타결도 되지 않아 초상집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381만여대를 판매해 2016년 대비 8.2% 급감했다. 기아차 역시 지난해 222만4638대에 그쳐 전년보다 9%나 판매량이 줄었다. 제품 경쟁력 확보에 실패해 중국과 미국 등 주력 시장에서 부진했던 영향이 컸다. 사실상 독점시장인 국내에서만 기세를 떨칠 뿐 ‘안방 호랑이’로 전락한 모양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난해 출시된 소형 SUV 코나는 3년 전에 나왔어야할 차”라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인 전기차의 시장 선점도 타이밍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근시안적인 경영 탓에 미래를 주도할 동력을 잃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현대차그룹의 대주주인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연봉도 쪼그라들었다. 현대차가 발표한 2017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로부터 총 80억900만원을 받았다.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2016년보다 13.7%나 줄어든 액수다. 정 부회장 역시 전년 대비 16.3% 감소한 18억100만원에 그쳤다. 현대차그룹은 총수 일가를 비롯한 임원진들이 보수를 자진 삭감하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현대기아차는 임원뿐만 아니라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도 인건비 절감에 나서고 있다.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부장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은 것이 단적인 예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는 56세부터 60세 사이의 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3월 한 달간 희망퇴직을 받았다.

노조 관계자는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이 진행됐다”며 “희망퇴직한 164명은 비조합원이기 때문에 지부 차원에서 입장을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희망퇴직자들은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별다른 저항 없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의 생산‧연구개발직은 노조에 자동 가입되지만 과장급 이상은 반드시 탈퇴해야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부장급 이상 희망퇴직이 아닌 55세 이상 전직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으로 강제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더 큰 문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8일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그룹사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순환출자를 자발적으로 해소하라고 압박하자 내놓은 해법이다.

총수 일가는 분할 합병 이후 계열사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낼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대주주, 현대모비스, 완성차, 개별사업 군 등으로 단순화 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현대차그룹이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노조가 “총수의 사익 편취 수단”이라며 가로막은 데다 주주인 펀드사 엘리엇도 “추가적인 개선안을 제시하라”며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3일 발간한 소식지를 통해 “현대차 재벌의 사익추구를 위한 순환출자 개편을 강력히 반대한다”며 “공정위에서 요구한 지배구조 개혁과 동떨어진 이번 꼼수는 총수 부자의 3대 세습과 사익추구로 귀결된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총수일가가 2001년 설립한 현대글로비스는 총수일가의 사익추구와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입법을 촉발시켰던 대표기업”이라며 “이번 개선안은 최대주주인 정 부회장에 대한 불법적인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의 가치를 높인 뒤 매각해 기아차가 보유한 16.9%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계획은 사익추구로 규정할 수 있다“며 사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사업은 현대글로비스가 아닌 현대차에 흡수돼야 한다는게 노조의 주장이다. 특히 노조는 ”현대모비스는 현대차와 2사 1노조를 결성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합병안은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미국계 펀드회사인 엘리엇도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의 지분을 10억달러(1조500억원)을 들여 매입했다”며 “주주이익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과 재무 개선 등에 대한 상세한 로드맵을 제시해야한다”고 공격했다. 삼성물산 합병에 제동을 걸었던 것처럼 여차하면 주주이익을 위해 실력행사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의 새판이 짜여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현대차그룹은 미래를 이끌어갈 선행기술이 부족한 데다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는 것도 진통이 예상된다”며 “최근 현대차그룹의 이익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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