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고종관기자
  • 입력 2018.04.07 20:49

일본, 제3기 암대책추진기본계획에 '일과 치료 양립' 전략 담아

[뉴스웍스=고종관기자] 지난 2월25일. 일본암협회 카키조에 타다오(垣添忠生)회장이 ‘전국 종단 암 서바이버 걷기’에 도전했다. 후쿠오카에서 출발해 전국 암센터 32곳을 방문하며 3500㎞를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다.

76세라는 고령에 그가 걷기를 시작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일본 의료계의 거물이다. 도쿄의대 출신으로 1975년 국립암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해 수술부장, 병원장을 거쳐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암치료 분야에선 정점인 국립암센터 총장을, 그리고 이후 3년은 명예총장을 지냈다.

이렇게 평생 암 환자를 위해 살았지만 정작 그는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총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발병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듬해 초 세상을 떠났다. 세포증식이 빠른 폐암이었다고 했다.

암환자는 고립감·소외감에 시달려

전공의 시절에 만나 40년을 함께 한 아내를 떠나보낸 뒤 그는 오랜 세월 방황했다. “일이 끝나면 술로 슬픔을 잊으려 했고,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아내를 가슴에 품고 4개국 80여 곳을 홀로 여행하며 마음을 추스리려고도 했다.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고립감과 소외감이었다. 암 환자와 가족은 진단을 받는 순간부터 이런 감정에 쉽게 무너진다고 그는 토로했다. 게다가 인터넷엔 근거 없는 상업적인 정보가 난무해 암환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그는 지난해 6월 암협회 내에 ‘암 서바이버 클럽’을 만들었다. ‘암환자를 고립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을 슬로건으로 정했다. 암환자에게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족과 친구, 사회가 서로 지지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암 서바이버 클럽’의 취지다.

암환자의 34%가 자의반타의반 실직

그의 이번 강행군은 ‘암 서바이버 클럽’의 지원과 확산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암환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개선하려고 한다. 그가 역점을 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암환자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과 치료의 양립’이다.

암환자는 자의반 타의반 쉽게 직장 밖으로 내몰린다. 또 대부분 그것을 당연시한다. 후생노동성 연구에 따르면 30%가 스스로 퇴직을 하고, 4%는 해고된다. 우리나라엔 암환자의 취업실태에 대한 통계조차 없다.

문제는 생산가능 나이의 암 생존자가 계속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선 매년 100만 명이 새롭게 암진단을 받는다. 이중 완치라고 할 수 있는 5년 생존율은 70%에 육박한다. 특히 일할 수 있는 나이(20~64세)의 암환자가 30%나 된다. 2012년에만 26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 수치는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암환자 취업을 정부 정책에 담아

암환자는 일을 놓는 순간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위축된다. 실직한 환자들은 설문조사에서 “일 할 자신이 없다", "회사나 동료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 "눈치가 보여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고 답해 주위사람과 회사에 대해 심한 거리감과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초 일본은 ‘제3기 암대책추진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큰 가닥 중 눈에 띠는 것이 ‘암과의 공생(共生)’이다. 세부지침에는 사회와 연계된 암환자 취업지원 대책이 들어있다.

암환자를 위한 취업전략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지역 암센터마다 ‘상담센터’를 만들어 의료진과 노무사 등 전문가들이 건강과 취업의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또 기업에겐 유연한 휴가제도나 근무제도를 도입토록 유도한다. 이를 잘 수행하는 기업에겐 포상을, 그리고 지원금도 조성키로 했다. 치료와 일의 양립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경영자나 인사노무담당자 교육도 한다.

암환자 삶의 질 다시 생각할 때

다시 카키조에 회장 얘기로 돌아가보자. 지난해 그가 만든 ‘암환자 서바이버 클럽’ 웹사이트(www.gsclub.jp)에선 암 관련 뉴스와 신뢰 있는 예방·치료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 상담은 물론 환자 교류행사도 개최한다. 현재 회원은 1000여 명. 앞으로 그는 이 숫자를 100만 명으로 늘리려고 한다. 갈 길이 먼 것 같지만 그는 암생존자 1000만 명 시대의 10%에 불과한 수치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는 암환자 하면 힘겹게 투병하는 중증환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조기암의 발견과 첨단의료 덕분에 치료 중에도 일을 병행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우리는 심지어 말기암에도 수술실을 지킨 의사, 강의를 한 교수 그리고 예술인 등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이 시대의 영웅’을 종종 본다.

일은 암 생존자의 든든한 경제적 후원자이며, 정신건강을 위한 비타민이다. 암생존자의 일자리를 위한 정부의 관심과 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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