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15 11:34

(3) 맥아더의 리더십-2

싸움터에서 가장 큰 금기는 과도한 자부심
상륙작전의 천재 맥아더가 빠진 큰 오류
상대를 깔보는 데서 생기는 치명적인 덫
 

> 일본군을 몰아내고 필리핀에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다. 맥아더 장군이 6.25전쟁 초반에 보인 전략과 전술상의 성패(成敗)를 두고 사람들은 다양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걸출한 장군으로 천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선보였음에도 그 뒤에 보인 행보는 다소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뒤 그는 미 10군단을 우회시킨다. 원산으로 다시 상륙작전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런 2차 상륙작전을 단념하고 그대로 10군단을 북진시켰다면? 이 점이 미스터리에 가깝다. 미 10군단은 부산으로 간 뒤 다시 상륙정에 올라타 원산을 향한다.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원산의 상륙작전 또한 북한군의 인근 해역 기뢰 설치로 인해 또 미뤄지고 말았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미 10군단이 부산으로 남행하면서 아군 전반의 북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동로의 확보가 늦어져 남에서 북으로 진군하는 부대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얘기다. 

 

>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항복을 이끌어낸 뒤 맥아더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상륙작전은 맥아더의 상징과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쫓겨 호주로 밀렸다가 다시 필리핀을 점령할 때까지 맥아더가 큰 성공을 거뒀던 대목이 바로 상륙작전이다. 호주와 필리핀 사이에 있던 남태평양 섬들에 잇따라 미군 병력을 상륙시키면서 일본을 크게 압박했던 작전이다. 전쟁사 전문가들은 대개 이 점에 주목한다. 상륙작전에 심취했던 맥아더가 ‘과거의 성공’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했을 가능성이다. 마침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는 생애의 정점에 와 있었다. 그는 결국 ‘이상한’ 판단을 하고 말았다. 미 10군단의 우회는 당시 작전 전반의 상황에서는 최악의 선택에 가까웠다. 유엔군 전반의 북진에 차질이 빚어졌고, 미군 주력의 한 갈래인 미 10군단이 한 달여 동안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사진 전문 잡지 라이프의 앵글에 잡힌 맥아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은 전쟁터에 선 군인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넘칠 때가 문제다. 자신을 크게 보는 대신, 상대는 아주 작게 본다. 제 능력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오만한 상상력도 부른다. 적을 쉽게 누를 수 있다는 불확실한 믿음이다. 적에 관한 정보도 놓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적정(敵情) 전반을 오판하는 상황에도 닿는다. 그런 모든 것을 동양에서는 경적(輕敵)으로 적는다. 적(敵)을 깔보는(輕) 일이다. 이럴 경우 닥치는 것은 헤어나기 힘든 덫이다. 실제의 전쟁 상황일 수도 있고, 머리와 마음속에서 펼쳐지는 경우일 수도 있다. 맥아더의 성패를 함께 저울질하는 사람들 눈에는 1950년 10월 이후의 북진 상황, 그 속에서 두드러지고 있던 여러 실패의 조짐들이 먼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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