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15 11:30
저장의 중심 항저우는 멀고 긴 베이징~항저우 대운하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저녁 어스름에 그곳을 떠나는 화물선의 모습이 왠지 비장해 보인다.

그러나 이곳 출신 유명인사 모두가 다 그렇지만은 않다.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강력한 애국적 정서를 선보였던 루쉰(魯迅)이나, 그에 800년 앞서 태어난 남송의 애국 시인 육유(陸游) 등은 모략과 정략에 뛰어나다고 하기보다는 우직한 정신력의 소유자에 가깝다.
루쉰은 <아Q정전> <광인일기(狂人日記)> 등의 작품을 통해 제국 열강의 침탈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중국의 재기(再起)를 촉구한 애국 문인이며, 육유는 강렬한 민족주의적 정서로 여진(女眞)족의 금(金)에 쫓기고 있던 송(宋)나라의 분발을 외쳤던 시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들이 모두 문인의 기질을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우언라이나 루쉰, 사안이나 육유 등은 얼핏 보면 기질이 달리 보이지만 사람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저장성이라는 곳에는 사오싱만 있지 않다. 그 옆에 자싱(嘉興)이라는 곳도 있고, 해안가로는 닝보(寧波)라는 곳도 있다. 인구 7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저장은 드넓고 다양하기도 하다. 그러나 모두에서 설명한대로 이곳은 전통적으로 문인 기질이 매우 강하다.
그 문인 기질은 때로는 우직한 정서를 표출키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바탕으로 아주 유연한 책략을 뿜어내는 뿌리로도 작용한다. 사오싱은 그런 점에서 저장의 대표적인 도시에 해당한다. 그에 가까이 있는 항저우(杭州)가 저장을 대표하는 간판 성도(省都)이기는 하지만 한 때 남송(南宋)이라는 왕조의 수도가 있었던 데다가 여러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든 대처(大處)라서 저장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있다.
그보다는 전통적인 문인의 기질이 그대로 살아 있고, 아울러 청나라 때까지 줄곧 ‘사야’의 전통을 강력하게 유지했던 사오싱이 저장의 정서와 역사적 맥락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 18차 당 대회를 통해 권력 정점에 올라선 위정성은 그런 저장의 정서, 나아가 ‘사야’의 전통을 짙게 간직한 인물이다.
그에게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책사 기질이 돋보인다는 게 중국 국내외 언론들의 중평이다. 깊은 생각 끝에 움직이면서 결국은 자신이 품은 뜻을 펼치는 데 능하다는 평이다. 그에게서는 우선 저우언라이의 지혜가 언뜻 비쳐지고, 군사전략가 사안의 면모도 보인다. 흉중의 깊은 뜻을 펼치려는 날카로운 책략가의 분위기도 풍긴다.
옛 전통이 오늘에 옛 모습 그대로만은 흐르지 않는 법이다. 그곳에 다양한 변수가 올라타면 그에 적응하는 현지의 전통은 옛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로도 나타난다. 지금의 저장이 그렇다. 이곳은 중국 개혁개방의 흐름을 타고 가장 먼저 발전한 동부 연해(沿海) 지역의 하나다. 중국 경제의 대표 간판이랄 수 있는 상하이(上海)와 비슷한 맥락으로 발전했으며, 아울러 그 문화적 토대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맥락을 형성한 이들은 아무래도 문인(文人)이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문인들이 중국의 역사 무대에서 활약했으나, 그럼에도 가장 대표적인 문인 전통을 내세운다면 아무래도 이 저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몇 사람이 그 모두를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이 저장의 전통적 문인 기질을 헤아리려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대담함에서는 떨어질지 몰라도 이들 저장의 전통에서 길러진 문인들은 세밀하면서 용의주도하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서 전략을 구성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저장 지역에 아주 오래 흘렀던 ‘사야’의 전통이란 뭔가. 따지면서 셈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헤아리면서 자신의 이해를 저울질 한다.
생각은 그로써 깊어지고, 안목은 그로써 길러진다. 행동에 무게가 실리면서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무엇인가를 항상 경계하며, 그것이 내게 무엇으로 닥칠지를 따지고 저울질 한다. 그것을 우리는 지혜(智慧)로도 적는다. 지모(智謀)라고 해도 좋다. 기지(機智)라고 해도 무방하다. 때로는 마음속의 헤아림이라고 해서 심산(心算)으로 적을 수도 있다.
그런 특징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지략(智略)이요, 책략(策略)이며, 모략(謀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의 인문(人文)과 그로써 만들어진 인물에 관한 여정(旅程)을 시작하면서 저장은 아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중국은 모략(謀略)의 전통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찬란하게 발전한 곳이다.
그 바탕은 아무래도 중국의 역사가 펼쳐진 이래 끊임없이 이어졌던 싸움과 다툼, 그리고 전쟁이다. 그를 통해 중국의 인문(人文)은 속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닥치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다툼에서 살아남는 길은 무언가.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면서 당면한 현실의 여러 복잡한 국면을 헤아려야 하는 일이다. 그에 따라 발전하는 게 바로 모략과 전략의 영역이다.
 
저장의 중심 항저우는 멀고 긴 베이징~항저우 대운하의 출발점이자 종착지다. 저녁 어스름에 그곳을 떠나는 화물선의 모습이 왠지 비장해 보인다.

저장은 그런 ‘헤아림’의 깊은 속성이 쌓는 모략과 전략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곳에 흘렀던 도저한 중국 전통의 문인 기질 때문이다. 그러나 저장은 중국의 극히 작은 일부다. 다른 지역에는 저장과는 다른 전통이 흐른다. 중국은 한 지역이 유럽의 한 국가와 맞먹는다고 해도 문제 삼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또한 다양하다. 저장은 우리가 내디딘 여정의 한 기착지에 불과할 뿐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