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상근기자
  • 입력 2015.12.15 14:37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약세로 방향을 잡았다. 환율 관리방식을 기존의 달러 유일 연동(페그)방식에서 13개국으로 구성된 ‘통화바스켓 연동’으로 바꾸며 강달러의 그늘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시장에서는 일본과 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 마저 약 위안을 기조로 가져간다면 여타 신흥국들도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환율전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15일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위안 기준환율을 전날 6.4495위안 보다 달러당 0.0064위안 오른 6.4559위안으로 고시했다. 달러/위안 환율은 지난 7일 전일(6.3851위안)대비 0.034위안 오른 이후 7일 연속 상승(가치하락)하며 0.0708위안, 1.11%나 급등했다. 2011년 7월 이후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 금리인상을 앞두고 중국이 위안화 약세(달러대비 환율상승)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중국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아가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중국발 환율전쟁을 앞두게 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약 위안, 중국의 선택

미국이 연내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지만 일본과 유럽은 경제성장 촉진을 위해 기존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쪽으로 통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이 동참했다.

중국은 국가전체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급격한 경기냉각을 막아 경기 연착륙을 이루는데 골몰하고 있다. 경기하강속도가 전망보다 빨라지자 지난해 11월 이후 6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며 기준금리를 6.00%에서 4.35%까지 낮췄고 은행 지준율을 몇차례 낮추는 등 통화량 확대 수단을 써왔다.

올 하반기에는 급냉하는 수출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업에도 나섰다.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이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수출상황은 더욱 악화될 처지에 놓였다. 현재 달러에 연동된 환율체제로는 위안이 동조해 강세로 갈 수 밖에 없다.

임박해보였던 미국의 7년만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인민은행은 지난 8월 11일 위안화 가치를 1.9% 기습 평가절하하고 12일에도 1.6% 내렸다. 달러당 환율은 6.20위안대에서 6.45위안대로 단숨에 올랐다.

당시 인민은행은 환율제도를 실질 실효환율로 바꾸겠다는 의지까지 공표했다. 달러에 연동된 위안 명목환율의 부작용으로 위안화가 과도하게 평가절상되고 있다는 점도 당연히 덧붙였다.

그 사전공지가 지난 11일 발표한 13개국 ‘통화바스켓’ 연동 환율지수로 표면화됐다. 달러단일 연동에서 통화바스켓을 통해 위안환율지수를 산출해보니 현재보다 1%p 정도 고평가됐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유로와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을 위안환율 결정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속셈이다.

◆ 환율전쟁에 신흥국 새우등 터질 수도

서방 언론들은 중국발 환율전쟁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위안화 가치의 추가 하락이 예고돼 있다며 세계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환율전쟁이 터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아시아 신흥국들도 덩달아 통화가치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국제투자은행들은 중국이 달러 연동 환율 관리방식을 완전히 전환하면 위안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해 환율이 달러당 7.00위안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1일 통화바스켓 연동 위안 환율지수를 발표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대비 위안이 1%p 이상 고평가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위안 환율이 최대 1%p 정도 더 올라야(가치절하) 적정 환율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미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EU와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자국통화 약세기조를 본격화하는데 따른 환율전쟁의 후폭풍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 경기 부양을 위해 이달 3일 예금금리를 -0.20%에서 -0.03%로 추가로 낮췄고 국채 매입 프로그램도 6개월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일본도 아베 정부 들어 2년간 100조엔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푸는등 경기부양을 위해 총력전을 펴는 만큼 섣불리 엔화 가치를 올리기 쉽지 않다.일본은행은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현재의 양적완화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위안의 추가 하락은 아시아를 포함한 다른 신흥국 통화에도 추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중국경제가 연착륙을 하면 다행이다. 단 그렇지 못할 경우 이들은 강 달러 영향에 따른 외자이탈과 원자재가격 하락 압력, 대 중국 수출채산성 악화, 외채부담 등 도미노 악재를 겪을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지난 8월 위안화의 3%대 기습절하때 중국발 환율전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후폭풍을 경험했다.

한국 원화를 비롯해 아시아 주요국 통화 가치가 줄줄이 경쟁적으로 떨어졌고 이에 따른 자금유출도 뒤따랐다. 급기야 리커창 총리가 나서 “위안화가 계속해서 절하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하며 국제시장의 불안감을 풀었다.

KB투자증권 김정호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위안의 SDR 편입이후 적정 통화가치를 지키겠다고 공언한 만큼 급격한 위안 절하를 단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인상기에 본격 진입하고 글로벌 경기가 예상대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각국은 좁아진 시장을 좀더 확보하기 위해 더 강력한 카드를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