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15 15:44
성리학 집대성자인 주희(朱熹)의 권학문을 옮겨 적은 중국의 서예 작품이다. 이 시구에 등장하는 지당(池唐)이라는 낱말에서 우리는 '당돌하다'의 唐突(당돌)이라는 한자 단어의 원래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낱말이다. “거 참 당돌하네…”라며 제법 나이 든 사람이 저보다 젊은 사람의 거리낌 없는 행위나 발언 등을 지켜보면서 끌탕을 칠 때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왜 한자로 唐突(당돌)일까. “거 참 당돌하네”라는 끌탕이 또 나올 판이다.

唐(당)은 우리에게 낯선 글자가 아니다. 우선 당(唐)나라가 있다. 그러나 왕조의 명칭 전에 이 글자는 어떤 뜻이었을까 살짝 궁금해진다. 글자의 초기 형태를 보면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연못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모습이다. 그로부터 ‘큰 못’이라는 뜻을 얻었다.

물을 가두는 못은 한자로 지당(池塘)이라 적는다. 흙을 가리키는 土(토)와 唐(당)의 합성인데, 원래 못은 唐(당)이라는 한 글자로 표시가 가능했다. 그러다가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물을 가두고자 쌓는 흙(土)의 글자를 붙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글자 등장하는 시 한 수.

 

늙기는 쉬워도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少年易老學難成)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아라 (一寸光陰不可輕)

못가의 봄풀이 꿈에서 깨어나기 전인데 (未覺池塘春草夢)

섬돌 앞 오동잎에는 이미 가을의 소리  (階前梧葉已秋聲)

 

허허로이 흐르는 세월 앞에 선 학인(學人)들을 옥죄는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이다. 唐(당)의 뜻은 분명해졌다. 물을 길을 수 있는 연못이다. 그로부터 다시 나아가 큰물이 담겨 있는 곳, 과장스러움, 커다랗다 등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적은 경우에도 이 글자를 적용한다. 황당(荒唐)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돌(唐突)의 突(돌)은 의미가 더 뚜렷한 편이다. 동굴(穴)과 개(犬)의 합성이다. 좁은 굴 등에 갇혀 있던 개가 갑자기 뛰쳐나가는 모습을 형용한 글자다. 그러니 상황이 갑자기 변하는 경우에 쓴다. 돌발(突發), 돌출(突出), 돌연(突然), 돌풍(突風) 등이 그렇다. 멧돼지를 등장시키면 저돌(猪突)이다.

요즘 북한판 ‘걸 그룹’인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의 공연을 갑자기 취소하면서 떠올려 본 말이다. 국제적 규범은 아예 상관치 않는 듯했던 여러 모습, 세인들의 예측을 불허함으로써 한반도 기류를 얼어붙게 했던 염려가 고스란히 떠오른다.

툭 튀어나오는 모습은 돌올(突兀)이다. 늘 그렇게 튀어나와 사람을 당황케 만드는 이들이 북한 노동당의 구성원들이다. 상식과 관례보다는 파격과 변수가 우선이다. 그러니 상대하기가 퍽 어렵다. 그러나 파격과 변칙은 그 행위와 발언이 거듭 이어지다 보면 곧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꾸준한 힘의 축적이 그런 파격과 변칙을 누르는 핵심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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