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4.18 12:11

"회장 선임에 정부 개입하는 구조 개선해야"

권오준 포스코 회장. <사진제공=포스코>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대치동 본사에서 열린 임시이사회를 통해 공식 사임했다. 정권에 따라 포스코 회장이 교체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부가 주인 없는 포스코를 전리품으로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 회장은 이날 이사회를 마치고 “포스코의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고경영자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인물에게 회사의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이사회에 전했다“ 사임 이유를 밝혓다.

하지만 권 회장의 사임 배경에는 정부의 사퇴 압력이 존재했다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권 회장은 포스코를 위기에서 건져내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이처럼 경영능력을 확실하게 인정받은 만큼 외풍이 아니면 사퇴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그해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중도사퇴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권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회장직에 오른 만큼 전 회장들과 같은 퇴진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과 12월 각각 미국과 중국을 방문하며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렸지만 권 회장은 번번이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10월 4일 완전 민영화된 기업으로 외국인 지분율이 57%에 달한다. 최대주주는 11.08%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공단이다. 하지만 포스코의 회장들은 민영화 이후에도 여전히 정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의 설립자인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1981년 회장 자리에 오른 이후 모두 8명의 회장이 탄생했지만 이들은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퇴진했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아 사퇴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약 2년 동안 황경로, 정명식, 김만제 등 3번이나 회장이 교체됐다.

또 유상부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1998년 3월에 새로 취임했지만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비리 혐의에 휘말리며 물러났다. 뒤이어 이구택 전 회장이 2003년 3월 취임했으나 역시 세무조사 로비혐의를 뒤집어 쓴 채 사퇴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외압설과 관련해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포스코 회장의 잔혹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회장직에 올랐던 정준양 전 회장은 연임까지 성공했으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9개월 만에 자진사퇴했다. 정 전 회장은 사퇴 이후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기소됐으나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정 전 회장에 이어 8대 회장으로 취임한 권 회장 역시 정치적 외압을 피해갈 수 없었다. 권 회장은 실적 부진에 빠진 포스코를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궤도에 올렸지만 끊임없는 외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이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포스코 회장과 정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회장 선임에 정부가 개입하는 구조적인 비리로 수난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 회장 역시 취임 초기 엔지니어 출신인 만큼 정치적 외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것이란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선임 과정에서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 수사를 받으며 수난사를 이어갔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KT 등 민영화 기업들은 정권이 전리품으로 여기고 있는 탓에 CEO들의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권은 포스코가 외풍에 시달리며 경쟁력 확보에 발목잡힌 상황을 직시하고 현 풍토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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