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4.27 10:54

6조9000억원 신규투자…전문가들 "제품경쟁력 없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카허 카젬(왼쪽) 한국지엠 사장과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이 26일 오후 인천 부평공장 본사에서 2018년 임단협 조인식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지엠>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노사 임단협 타결에 이어 GM과 산업은행의 자금수혈까지 결정되면서 한국지엠의 정상화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소비자 신뢰와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대규모 투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전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정관리 직전까지 몰렸던 한국지엠은 정부의 경영정상화 3대원칙을 바탕으로 극적 회생의 9부 능선을 넘었다. 한 때 철수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산업은행와 GM본사가 정상화 방안에 조건부 합의하면서 당분간 국내 잔류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이날 이동걸 회장은 댄 암만 GM 총괄사장과 만나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조건부 LOC(금융제공확약서)를 발급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은 지분율과 비토권 확보, 향후 10년간 국내공장 유지 등을 전제로 한국지엠에 7.5억달러(약 81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GM 역시 당초 제시했던 23억달러(2조4000억원)보다 13억달러 늘어난 총 36억달러(3조8000억원)을 신규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GM은 출자전환하기로 한 차입금까지 합치면 총 6조9000억원을 한국지엠에 쏟아붓게 된다.

산업은행은 “앞으로도 세부적인 내용 확정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지만 최종 협상까지는 비공개할 것”이라며 “실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GM측과 경영정상화 방안 협상 내용을 최종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5월초 최종 실사결과를 확인한 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주주간 계약서를 발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진통을 겪었던 노사 임단협 역시 극적 타결에 이어 노조 찬반투표까지 66.3%로 가결되면서 정상화는 더욱 속도를 내게 됐다. 이날 노조원 1만223명이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 참여한 결과 67.3%인 6880명이 찬성해 올해 임단협 교섭이 최종 마무리 됐다.

한국지엠 노사는 이번 임단협을 통해 노조의 임금동결 및 성과급 미지급, 일부 복리후생제도 축소, 군산공장 잔류인원 희망퇴직 후 전환배치, 신차 2종 배정 등에 합의했다.

당초 정부는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 주주, 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분담, 장기적으로 생존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등을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3대원칙으로 내걸었다. 이에 노조는 물론 대주주인 GM까지 고통분담은 물론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문제는 국내시장에서 어떻게 판매를 회복하느냐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내수에서 불과 6272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군산공장 폐쇄가 결정된 전달보다는 판매량이 다소 올랐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57.6%나 급감했다. 반면 신차효과를 등에 업은 쌍용차는 한국지엠이 부진한 틈을 타 전달에 이어 내수 3위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

대규모 자금 투자와 신차배정, 장기간 국내체류 등이 결정되며 한국지엠은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은 여전한 상황이다. 실제로 자동차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과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에는 “어차피 쉐보레 제품을 살 소비자는 없으니 떠나는 게 낫다”라는 성토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의 제품 경쟁력 제고와 소비자 신뢰회복이 선행되지 않으면 자금수혈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지엠은 생산능력을 감안했을 때 국내시장에서 최소 15% 점유율은 확보할 수 있지만 현재 5%를 밑돌고 있다”며 “국내 소비자 입맛에 맞는 좋은 차가 있어야 하는데 지난 수 년 간 이렇다 할 경쟁력 갖춘 차가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다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정부가 혈세를 지원하는 만큼 노사는 판매 및 신뢰회복 방안부터 시급히 찾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