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5.12.17 05:00

이재현 회장 양형기준은 엄벌주의?…자의적·포괄적 법 적용이 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배임죄'에 대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기업의 배임죄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왜 이 회장의 '배임죄'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일까.

재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기조 변화다. 재계는 배임죄에 대해 '경영상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근 사법부의 판결 흐름과 이 회장의 선고 하루 전날 윤석금(70) 웅진그룹 회장의 항소심 집행유예 판결로 이 회장에게 회생의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재벌총수 '회생기회' 대신 '엄벌주의'?

하지만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감형했지만 실형을 선고했다. 특히 재판부는 양형이유를 설명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라고 하더라도 법질서를 경시하고 조세포탈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면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것이 재발을 방지하고 진정한 민주적 경제발전에 이르는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루 전인 14일 "기업을 경영하면서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윤 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기조가 '엄벌주의'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윤석금 회장의 집행유예로 이재현 회장에게도 회생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실형이 선고되면서 사법부의 '재벌총수 엄벌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냉혹한 법적 잣대…같은 재벌총수에도 역차별?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이 논란을 빚는 또다른 이유는 사법부의 '냉혹한' 법적 잣대 때문이다. 원래 이번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배임죄'의 유무죄 판단이었다. 조세포탈(251억원)과 횡령(115억원) 혐의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법원이 지난 9월 배임에 대해 검찰의 법조문 적용 오류를 지적하며 파기환송하면서 집행유예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이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배임죄'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통상 대법원에서 배임죄를 무죄로 판단하지 않았어도 법 적용 오류를 지적했고, 최근 '배임죄'에 대해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에 비춰 파기환송심에서 배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었다"며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이 "즉각 재상고해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며 "유죄가 인정된 형법상 배임 부분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다툴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온정주의' 여부도 관건이었다. 이 회장은 신장이식수술에 따른 부작용과 신경근육계 유전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온정주의'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건강문제도 환송 전 판결의 형량에 다 반영됐고 건강 문제는 근본적으로 형량의 문제가 아니라 형 집행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기업비리 혐의로 박근혜 정부에서 첫 구속기소된 재벌총수라는 상징성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배임죄'만 놓고 본다면 윤 회장과 형평성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윤 회장은 항소심에서 배임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 받았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단정하기 이르지만 이 회장은 현 정부에서 기업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첫 재벌총수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다른 재벌총수와 달리 판단할 수 있다"며 "재벌총수 사이에서도 '역차별'이 존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모호한 법 조항이 논란 불씨…'판사 성향' 따라 판결 비아냥도

이 같은 배임죄 논란의 불씨는 법 조항의 모호성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배임죄는 법전이 아니라 판사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는 비아냥 섞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2항에 규정돼 있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가 그 내용이다. 재산상 이익이 5억원이 넘으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으로 다뤄진다. 

그런데 얼핏 봐도 기준이 모호하다. '타인의 사무를 처리한 자'는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 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손해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임죄 처벌이 논란거리가 되고, 법 적용이 자의적·포괄적이 될수 있는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배임죄 조항에서 '고의성'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도 구체적이지 않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배임죄 법 조항 개선돼야…'고의성' 있는 경우 처벌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임죄의 처벌 요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회에서도 '배임죄' 개정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지난 8월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배임죄 개정안이 그것이다. 개정안은 "배임죄 처벌 조건을 '명백한 고의성이 있을 때'로 제한해 정상 경영활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 개입을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하고 있다.

전삼현 기업소송연구회장은 "형법상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부정하는 배임죄 규정은 사법부에 폭넓은 재량을 허용하면서도 국민 기본권의 핵심인 죄형 법정주의, 과잉금지의 원칙을 침해하는 형법제도"라며 "최소한 배임죄의 처벌 요건을 명백한 고의성이나 목적성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는 형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기업 전문 변호사는 "배임죄는 형법상 '미생'으로 볼 수 있다"며 "배임죄는 고의성 여부나 법의 적용 잣대가 자의적이라서 명확한 기준의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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