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5.12 07:48

신차배정 사실상 1종밖에 없고 비정상적 거래구조도 '여전'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국내 최대의 외국인투자기업인 한국지엠이 존폐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국지엠의 최대주주인 GM과 2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총 71억8000만달러(약 7조7000억원)을 쏟아붓기로 하면서 외형상 한국지엠 사태는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11일 오후 산업은행은 GM과의 협상결과에 따라 법적 구속력이 있는 LOC(금융제공확약서)를 발급했다. 정부는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하는 대가로 향후 10년 간 GM을 국내에 붙잡아두기로 합의했지만 어쩐지 꺼림칙하다. 이번 정상화방안에는 미래먹거리가 보이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해결방안도 없어 ‘선언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눈 뜨고 코 베였다“는 말처럼 우리 노동자를 볼모로 삼은 GM은 예상대로 산업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을 뜯어내는데 성공했다. 산업은행은 전액을 출자하기로 한 반면 GM은 어찌된 일인지 ’대출‘형식으로 28억달러(3조원)를 신규 지원하기로 했다. 그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줄곧 강조했던 “투자든 대출이든 GM의 투자방식과 동일하게 가겠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기존 차입금 28억달러를 출자전환하기로 했지만 한국지엠은 또 다시 같은 빚더미를 떠안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협상결과에서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이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회사가 적자를 벗어나려면 경쟁력 갖춘 제품을 내놓고 판매를 회복해야 하는데 고작 신차 2종 배정만 약속했을 뿐이다. 노조에 따르면 실질적인 신차는 창원공장에 배정될 CUV 단 1종 뿐이다. 소형SUV 트랙스 후속 모델은 사태 발생 이전부터 이미 배정하기로 돼 있어 협력사들도 이미 부품생산 준비를 마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올 뉴 크루즈와 캡티바, 올란도가 단종된 현 상황에서 판매 라인업 가운데 그나마 경쟁력을 갖춘 차종은 트랙스 후속을 포함하더라도 스파크, 말리부 등 3종뿐이다. 여기에 CUV 신차 1종이 더해져봐야 극적인 판매회복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현재의 판매부진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산업은행의 비토권과 GM의 지분매각 제한은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수익을 내지 못한 기업은 사라지는 게 당연한 시장논리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도 “정부는 GM과의 협상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 본다”면서도 “당장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혈세로 돈잔치를 벌여 연명시키는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백운규(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0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자동차산업협동조합 회의실에서 베리 앵글(오른쪽) GM 사장.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과 함께 상호협력 MOU을 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특히 신차를 제대로 배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GM이 한국지엠의 정상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난 수년 간 GM은 한국지엠을 현금을 뽑아쓰는 ATM기로 여겼을 뿐 제대로 된 차종을 배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지엠에서 자금을 쏟아부어 애써 개발한 글로벌 차종들은 다른 해외법인에서 생산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 볼트EV만 해도 한국지엠이 주도적으로 개발했지만 정작 미국에서 생산돼 한국에서 수입판매되고 있다.

정부와 GM의 협상내용에는 이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최종 실사결과 한국지엠과 GM 본사 간의 이전가격 등 거래는 여타 계열사와 유사한 수준이며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게 정부와 산업은행의 판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지엠의 거래구조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지엠은 1년에 6000억원 가량을 R&D 비용으로 지출했는데 정작 생산물량을 받아온 것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대규모 지원금을 어떻게 쓰느냐에 한국지엠의 미래가 달려있다. 부실원인으로 지적돼 온 불공정한 거래구조를 개선하고 자체개발한 경쟁력 갖춘 신차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10년이 아니라 1년도 안 돼 사태가 재현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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