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5.12.18 16:17

내년 인터넷은행 출범, 산업계 지분율은 4%에 고정

-기업 "4%지분으로 인터넷은행 경영 어떻게 하나"
-유럽은 無 제한, 일본은 예외규정 둬 숨통 틔워줘
-한국은 산업자본 은행 지분 4%로 제한, 앞길 막아

전경련은 지난 10월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방향과 정책과제’ 세미나를 열고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61개 대기업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사진:전경련>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연방정부는 1980년대 초반 주도적으로 개발한 인터넷의 상용화를 위해 미국 최대 통신사였던 AT&T에 경영권 인수를 제안했다. AT&T는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이 왜 필요한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거절했다.

IBM은 이미 1970년대 후반 노트북으로 더 잘 알려진 퍼스널컴퓨터(PC) 생산기술이 있었다. 이 회사 경영진은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뒤늦게 PC 생산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후발주자의 한계에 걸려 사업을 접어야 했다. 둘의 공통점은 곧 닥칠 새 흐름에 둔감했으며, 아울러 그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래 예측은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변화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는 길 뿐이다. 우리에겐 시행한 지 65년 지난 소위 ‘은산분리법(실제 은행법)이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막기 위해 마련한 법이다.

새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미래형 신수종 사업이 법에 가로막혀 제약을 받는다면 그를 가로막는 문제와 장애는 선뜻 풀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국회의 상황을 보면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미래 예측은커녕, 환경적응마저 외면한 듯하다. 국가적으로 감내해야 할 손해가 법 개정으로 우려되는 손해보다 더 클 수 있는데도 말이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대학 교수는 “산업계 자본의 은행 소유지분율을 4%로 제한하는 현행 은행법은 은행의 대기업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감 때문”이라며 “그러나 해외 사례와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견줘보면 남들은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만 불안하다고 기차를 고집하는 상황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1월29일 국내 첫 인터넷은행으로 K-뱅크와 카카오뱅크를 선정했다. 미국과 유럽보다는 20여년, 일본에 비해선 15년 늦은 인터넷은행 시대가 2016년에야 열리는 셈이다. 늦은 감은 있으나 스마트폰 3000만대 보급시대에 시행되는 인터넷뱅크에 대해 기대감은 크다. 비대면(非對面)거래가 활성화해 금융업무가 편리해지고, 중신용자(신용등급 5~6등급‧약1200만 명 추정)에 대한 중금리 상품의 출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법 개정하면 은행 사금고화 되나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투자신탁사의 사금고화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그룹·효성그룹 사태 등은 은산분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적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제도적 보완장치도 여럿 만들어진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공시제도, 이사회제도를 통해 투명성을 키워온 데다 대주주 신용공여한도 규제도 마련해 이를 어길 경우 은행 경영진의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뿐만아니다. 정부는 이미 은산분리 완화에 대비해 엄격한 보완장치도 마련했다. 산업자본 중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 61개)은 아예 규제완화 대상에서 제외, 경제력 집중 논란이 나오지 않게 선제조치를 취했다.

지분보유 한도도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수준까지만 허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다른 주주들의 견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대주주와의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대주주 신용공여 한도를 현행 자기자본의 25%에서 10% 이내로 낮추고 대주주의 발행주식 취득은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문 교수는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은산분리 완화 법안은 대기업을 배제하고 있으며, 핀테크 시대에 대비해 IT기업들이 은행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IT기업의 인터넷은행 경영참여 許하라

국회에 계류 중인 은산분리 완화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은행 지분 보유율은 현행 4%에서 최대 50%까지 늘어난다. 문 교수는 법안 통과로 예상되는 편익에 대해 “먼저 진입장벽 완화로 금융시장 경쟁이 촉진되고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이 가능해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원가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의 등장으로 금융상품의 가격 인하(이자율 인하)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터넷은행은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이 맡아 기존의 은행 경영 행태와 다른 창의적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은행은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사례를 종합해 기업이 최대주주인 은행을 출현시켜 은행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자 도입됐다. 정보통신, 유통 등 종전의 금융 산업과는 다른 업종에게 은행 경영을 맡겨 보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기업(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출자제한은 유지하면서 카카오와 같은 산업자본 기업이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경영권을 쥘 수 있도록 은행지분(최대한도 50%)을 확대시켜줄 은행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19대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여야 합의는 어려워 보인다.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여전히 은행의 사금고화 등 해묵은 우려를 되뇌고 있는 상황이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 인터넷은행 출범을 앞두고 획기적인 은행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데, 현행법대로라면 의결권 있는 주식 4%만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생겼다”며 “동업자들과 이해 충돌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은행 경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예비인가를 받은 KT도 마찬가지다. KT는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돼 이번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예외 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산 넘어 또 산이다.

변화 없이 ‘동북아금융허브’ 가능할까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은행법 개정필요성 관련 보고서에서 “은산분리를 완화하면 국제은행 자본규제기준인 바젤 Ⅲ(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강화기준, 2019년 시행)를 앞두고 새로운 산업자본 유입으로 금융기관의 자본충실도도 높아질 수 있다”며 “주인 있는 경영으로 경영의 효율성이 높아져 고배당 또는 은행주 가격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은산분리를 풀어야 할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일본은 2000년 e뱅크라는 1호 인터넷은행을 인가하면서 은산분리 예외를 인정했다. 소니뱅크를 비롯해 일본 유통그룹 계열인 이온뱅크, 세븐뱅크 등이 나온 배경이다. 미국은 은산분리의 원칙을 유지하고 있지만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최대 25%까지 보유하는 것을 허용한다. 유럽은 아예 은산분리에 관한 규정이 없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금융 산업 부문별 순위를 보면 한국은 절망적이다.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7위, 대출의 용이성 119위, 금융서비스 이용 가능성 99위 등이다. 따라서 새로운 경쟁자 및 차별화된 사업모델이 등장해 은행 간 경쟁 촉진, 기존 은행의 서비스 개선노력 촉발, 고용확대 등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서민금융 혜택 및 중간금리 대출도 확대해야 한다. 신용도 5~6등급(중신용자)에 해당하는 1180만 명이 연 15~ 34.9%에 이르는 고금리 사각지대에 노출돼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은산분리 완화 법안은 산업계 전반에 걸친 전면적 시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핀테크 등 새로운 형태의 금융 산업 육성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 명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은산분리와 관련해선 산업자본의 정의와 지분 소유 규제 등 두 가지 작업이 필요한데 몇 %로 규제할지에 앞서 산업자본의 정의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지가 중요하다"며, 즉 “무조건 막을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의 주체인 기업의 업종과 형태에 따라 은산분리를 완화해 나가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