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6.03 05:15

"비정규직도 필요 노동유연성을 " VS "직접고용이 경쟁력에도 도움"

<사진=뉴스웍스DB>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침체에 빠진 국내 자동차업계가 비정규직 불법파견 논란에 휘말리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내하청 공정에 대해 법원과 고용노동부가 잇따라 시정명령 및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는데도 사측이 침묵하자 노사 간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경영위기와 물량감소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위기는 경제 주체 간 신뢰를 기반으로 돌파해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 금속노조 "불법파견 방치한 고용부 장관 고소"…특별근로감독 통한 시정명령 촉구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기아차 정규직지회 공동투쟁위원회는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무를 유기하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을 고소‧고발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고용부는 지난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후 14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이 기간동안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는데도 고용부는 근로감독과 시정명령 등 기본적인 직무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현대‧기아차는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손해배상 가압류로 탄압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지난 3월 28일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시정명령과 고용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지만 정부는 대화조차 응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지엠, 파리바게뜨, 롯데캐논 등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현대‧기아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고용부는 2004년 현대차 사내하청 127개 업체 9234개 공정을 불법파견 공정이라 판정했다. 특히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법원에 낸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은 2010년과 2015년 대법원, 그리고 2017년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까지 연달아 원고가 승소했다.

이에 따라 사측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6000여명의 불법파견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3500명의 근로자들을 추가적으로 특별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불법파견 근로자의 정규직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는데도 노조가 불만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서울고법 원고 승소 판결 이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늦어지는 만큼 고용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즉각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측은 이미 1만여명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하는 등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를 갖고 있다며 맞서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소송 건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을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막 경영정상화의 시동을 건 한국지엠도 이 같은 불법파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서 고용부 창원지청은 지난 28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8개 1차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774명이 불법파견이라고 결론 내리고 시정지시 명령서를 사측에 전달했다. 특히 이번 불법파견 대상에는 올해 초 협력사 변경으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아 사실상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64명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한국지엠은 7월 3일까지 774명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하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노동자 한 명당 1000만원씩, 총 77억4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창원과 부평공장, 그리고 군산 출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약 1500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경영난을 겪는 한국지엠이 당장 직접 고용 명령을 이행하긴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지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13년 간 수차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내고 전원 승소했지만 한국지엠은 여전히 직접고용을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016년 10월 대법원 승소자 5명 전원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 비정규직은 노동유연성 확보와 위기대응 위한 '필요악'

이 같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비정규직은 노동유연성을 위한 ‘필요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비정규직이 활성화 돼 있고 노동에 유연성을 부여해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정규직이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현실을 감안했을 때 비정규직이 필요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을 비롯해 생산물량에 따른 근무체계 전환, 무급휴직 등 다양한 유연성 제고방안을 통해 각종 리스크에 신속히 대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 받아야…"직접고용 토대로 노사신뢰 구축 필요" 

반면 노동계는 생산 공정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고 원청의 업무명령에 따른 만큼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미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난 만큼 사측이 법적책무를 성실히 이행해야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인건비를 지출하는 직접 고용방식 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며 “경영위기와 생산물량 변화 등에 대응해 비정상적으로 늘린 비정규직이 사라져야 사용자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이어 “직접고용 방식을 토대로 노사 간의 신뢰를 쌓는다면 경영위기가 오더라도 생산물량 조정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경제 주체 간 사회적 대화가 더욱 진전되고 열악한 사회안전망도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