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18 11:33
서울 시청의 옛 청사와 새 청사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시청(市廳)이라는 낱말도 여러 의미를 품는다. 의젓하고 떳떳한 사람, 인격이나 지식의 수준 등을 가리키는 새김도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아니더라도, 시청은 적어도 가장 유명한 장소일 것이다. 월드컵 때 붉은 옷을 입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한 곳이었고, 거친 정쟁의 불씨가 옮겨 붙어 군중들의 정치적 구호 소리가 늘 높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청은 곧 시청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시청은 city hall이다. 역시 그곳 도시의 행정 권력이 버티고 있는 곳이라서 세계 어느 도시의 city hall은 다 유명하다. 우리는 한자에 관심이 많으니까, 우선 그 city hall은 젖혀두고 市廳(시청)을 들여다 볼 일이다.

앞의 글자 市(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장(市場)’의 뜻이다. 사람들이 물건을 가지고 나와 다른 물건, 또는 화폐와 교환하는 장소다. 이 한자의 연원은 아주 오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서로 물건과 물건을 맞바꾸는 이른바 ‘물물교환(物物交換)’의 초기 교역 형태는 인류가 원시부족 상태를 벗어난 뒤 바로 벌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市(시)라는 글자는 항상 우물을 뜻하는 井(정)이라는 글자와 붙어 다녔다. 그래서 동양 초기의 시장은 市井(시정)이라고 적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우선 물건과 물건, 또는 물건과 화폐를 서로 바꾸는 시장이라는 뜻의 市(시)가 지니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 다음에 왜 우물을 뜻하는 글자를 붙였는가가 문제다. 먼저 등장하는 이야기는 ‘정전(井田)제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정전제라는 것은 밭을 우물 井(정)자의 형태로 구획한 뒤 가운데 부분은 여러 사람이 함께 소유하는 공전(公田)으로 하고, 나머지 여덟 부분은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사전(私田)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 초기 왕조인 은(殷)나라와 그 뒤를 이은 주(周)나라에서 시행했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형태의 제도가 실행에 옮겨졌는지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어쨌거나 후대의 정치 사상가들은 이를 이상적인 형태의 토지 소유제, 그리고 세제(稅制)로 간주해 자주 정전제를 언급했다.

일설에는, 과거 동양사회에서 시장을 조성할 때 정전제의 토지 구획처럼 일정하게 구역을 나눠 만들었다고 해서 시장을 뜻하는 市(시)와 정전을 의미하는 井(정)을 붙여 市井(시정)으로 적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어의 유래를 설명하는 쪽은 어딘가 팍팍해 보인다. 살갑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다른 한 설명이 오히려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더 정감적이다. 井(정)이라는 글자의 으뜸 새김은 ‘우물’이다. 우물은 물이 나오는 곳이다. 물은 사람이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사람 사는 곳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게 마련이다. 물을 기르는 우물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결국 마을도 들어선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장터가 생긴다. 그래서 우물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레 들어선 것이 市井(시정), 곧 시장이자 장터라는 주장이다.

이 정도면 궁금증이 적당히 풀릴 법하다. 정전제가 말로만 그럴 듯했지, 실제는 현실로 구현하기 어려웠으리라는 여러 학자들의 설명을 감안하는 게 좋겠다. 그렇다면 과거 동양에서 시장이 현실 속에 나타나는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적격이겠다. ‘우물이 있어 사람이 모이는 곳에 생겨난 장터’ 말이다.

市廳(시청)을 이루는 그 다음의 글자가 廳(청)이다. 이는 건축의 구조에서 살필 필요가 있는 글자다. 동양의 고대 일반 건축 개념 중 중요한 몇 가지가 堂(당)과 室(실)이다. 우리식으로 적자면, 앞의 堂(당)은 외실(外室)이고, 뒤의 室(실)은 내실(內室)이다. 중국 고대 예절과 제도 등을 적은 <예기(禮記)>에 따르면 앞의 것은 창(窓)과 호(戶)의 바깥, 뒤의 것은 그 안쪽이다.

窓(창)과 戶(호)를 우리는 한 데 합쳐 窓戶(창호)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자면 내실이 있는 방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그럴 듯하게 지은 옛 동양의 주택 중에서 주인이 사는 핵심 건물의 공개적인 장소가 堂(당)이요, 외부인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방이 室(실)이라고 보면 좋다.

실제 堂(당)은 외부의 손님 등이 집안에 들어와 주인과 마주 앉는 장소다. 우리 한옥에서는 이를 대청(大廳)이라거나, 대청마루로 불렀다. 이 대청에서는 집안 문중(門中)의 연례행사인 제사와 차례 등을 올렸고, 각종 잔치와 이벤트를 벌였던 곳이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외부인이 들어와 공개적인 행사를 치르는 장소다. 그래서 堂(당)은 대청을 뜻하는 廳(청)과 동의어다.

그에 비해 室(실)은 비공개 장소다. 외부인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이다. 은밀하며 비밀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글자, 堂室(당실)은 매우 대조적인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공개적인 곳, 다른 하나는 은밀한 곳이다.

<논어(論語)>의 주인공 공자(孔子)가 그의 제자인 자로(子路)를 평가한 말이 유명하다. 자로라는 제자는 성정이 활달하고 격정이 넘쳤다. 따라서 그가 연주하는 음악도 호방하지만 과격했다. 공자는 그런 자로를 두고 “堂(당)에는 올라섰으나, 室(실)에는 들어서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했지만, 종국에 닿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곳에는 들어서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말은 나중에 성어로 정착한다. ‘승당입실(昇堂入室)’이다. 堂(당)에 오른 데 이어 室(실)에까지 들어섰다는 뜻인데, 사람이 전문 영역 등에서 쌓은 재주가 일반 수준을 넘어 최고의 경계에까지 닿았다는 찬사다. 누구나 듣고 싶은 평가일 것이지만, 거저 노릴 수는 없는 법. 피눈물 나는 인고(忍苦)와 노력이 보태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얘기다.

市(시)는 市井(시정)이라는 단어에서 흘러나와 결국은 행정구역을 일컫는 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곳에 사람이 없을 수 없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면 일정한 행정이 뒤를 받쳐야 한다. 그러니 국가 밑에 각 행정구역이 있고, 그 행정구역 명칭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게 바로 이 市(시)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廳(청)은 堂(당)의 다른 말이다. 쓰임새와 의미 또한 같다. 공개적인 장소라는 의미가 나날이 커져 이제는 관청(官廳)의 의미로도 많이 쓴다. 市廳(시청)이 우선 그렇고, 교육청(敎育廳), 기상청(氣象廳), 환경청(環境廳) 등의 이름도 생겼다. 중국에서는 공무를 보는 곳이라 해서 판공청(辦公廳)이라는 단어 등이 많이 쓰인다.

堂(당)이라는 말도 재미있다. 공자는 어느 한 분야의 핵심이 있는 곳을 室(실)로 표현했지만, 실제의 건축 모습에서 가장 웅장하고 멋진 곳은 堂(당)이다. 공개적인 장소이니 만큼 그럴 듯하게 지어야 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堂(당)의 모습은 멋지다. 그 모습이 멋져서 堂堂(당당)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정정당당(正正堂堂)’의 어원이다. 바르면서도 웅장한 모습의 형용이다.

서울의 市廳(시청)도 그리 당당하면 좋겠다. 그 안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모든 공무원들 또한 정정당당하면 좋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모든 영역의 일꾼들이 正正(정정)하며 堂堂(당당)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일정한 수준에 오르는 昇堂(승당)에 이어, 최고의 수준에 이르는 入室(입실)의 경지를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하철 한자 여행-1호선>,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