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5.12.18 17:31

한국제분 매각 실패로 그룹 해체 수순...수입차·와인 등 무리한 확장 탓

미국 나파밸리 다나 에스테이트 포토밭과 생산 와인들.

한국제분 매각 협상이 잇따라 결렬되면서 동아원그룹이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18일 동아원은 채무이행자금 부족으로 303억9000여만원 규모의 무보증사채 원리금을 미지급했다고 공시했다. 동아원은 "당사의 최대주주는 경영권 이전을 수반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방식의 인수합병(M&A)을 추진해 본 사채를 상환할 계획이었으나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자금조달에 차질이 발생해 부득이 원리금을 만기에 변제하지 못하게 됐다"며 "필요한 경우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워크아웃) 절차의 개시 등 협조를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원은 자체 자금조달로 재무구조 개선이 어렵게 되자 경영정상화를 위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절차를 추진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까지 최소 2개월이상 걸리는 만큼 그때까지 견뎌낼 경우 워크아웃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 절차를 밟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60년 기업 왜 몰락했나

동아원그룹은 이희상(70) 회장의 부친인 고 운산 이용구 회장이 1956년 군산에 설립한 ‘호남제분’을 모태로 성장했다. 2012년 그룹명을 운산에서 동아원으로 변경했다.

1993년 창업주 타계 후 경영일선에 뛰어든 이 회장은 신동아그룹이 해체되면서 매물로 나온 동아제분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주력사업인 제분과 다소 연관성이 떨어지는 수입차, 와인, 패션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부채 비율이 789%에 달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총 부채는 6445억원으로 매출액(6469억원)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영업손실도 175억원, 순손실도 776억원에 달했다. 9월말 기준 회사채 미상환 잔액이 460억원, 18일 만기인 회사채와 사채도 각각 300억원씩 총 600억원이며 내년 1분기까지 총 3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60년 역사의 동아원이 몰락한 이유로 무리한 확장을 꼽는다.

페라리를 끌고 와인을 즐기기로 유명한 이 회장이 자신의 취미 위주로 사업을 확장하다 화를 불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내 와인수입사와 미국 와인 계열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이탈리아 패션의류 계열사는 지난해 청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간 시너지효과가 쉽지 않은 이종 산업에 진출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 온 제분업까지 위기에 빠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올들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지난 3월부터 여러 계열사를 정리해왔다. 올 3월 페라리와 마세라티 수입사인 FMK(포르자모터스코리아)를 사돈이 오너인 효성에 200억원에 매각했고 4월에는 대산물산의 자산인 서울 강남구 논현동 운산빌딩을 392억원에 팔았다. 강남구 신사동 와인문화공간인 포도플라자는 150억원에 넘겼으며 당진 탱크터미널 지분 100%는 부채(966억원)를 넘기는 조건으로 LG상사에 ‘0원’에 넘겼다.

지난 9월에는 캄보디아 사료 공장 법인인 코도피드밀(Kodo Feedmill) 지분 100%를 CJ제일제당에 68억원에 매각했다. 서울 종로의 고급 레스토랑 ‘탑클라우드’ 지분도 120억원에 식품첨가물향료 제조업체인 서울향료에 지난달 팔았으며 최근 이 회장의 애정이 깊은 와인수입사 나라셀라도 지분 80%는 오크라인에 250억원에 넘겼다. 올들어 매각한 자산만 1000억원을 훌쩍 넘어간다.

그럼에도 유동성 위기가 해소되지 않자 급기야 그룹 지주회사 격인 한국제분까지 매물로 내놨다. 한국제분은 국내 제분 시장에서 25%가량 점유율을 갖고 있는 빅3업체다. 한국제분이 동아원의 지분 53.38%를 갖고 있어 사실상 그룹 전체 경영권이 매물로 나온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한국제분 매각 우선협상대상자였던 JKL파트너스에 이어 차순위협상자였던 신송홀딩스-한화자산운용 컨소시엄까지 인수를 포기하면서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됐다. 협상 결렬 후 신용평가사들이 동아원의 신용등급을 단번에 4단계 강등시키자 이날 동아원 주가는 폭락했다.

현재 동아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있는 와이너리 다나 에스테이트(Dana Estates)를 비롯해 단하유통, 유기농업체인 해가온 등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대통령 사돈기업· 박세리 후원 등 화제 몰고다녀

동아원그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 효성과의 사돈기업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 회장의 1남3녀 가운데 3녀는 모두 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혼맥이 연결돼 있다. 장녀 윤혜 씨는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와 결혼했다. 이로 인해 동아원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있다는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차녀 유경씨는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영수 서울대 의대 교수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는데 신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 씨를 사위로 둔 적 있다. 막내딸 미경씨는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도 사돈 관계가 됐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벨마이크로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통산 25승을 기록한 박세리 선수가 모자에 부착한 ‘온다도로’ 로고로 동아원그룹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로 황금빛 물결이라는 뜻을 지닌 ‘온다 도로’(Onda d'0ro)는 동아원이 미국 나파 밸리에 100% 투자해 설립한 다나 에스테이트가 생산하는 와인이다. 당시 메인 스폰서가 없던 박 선수는 그 해 초부터 온다 도로의 로고와 상표가 부착된 모자와 상의를 입고 대회에 출전했는데 대회 우승 이후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됐던 것이다. 이 회장이 개인적으로 박 선수를 후원해오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또다른 와인 ‘다나’가 당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자 박 선수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로고를 부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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