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윤희 기자
  • 입력 2018.06.14 13:24
다모토리(최승희)

2011년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는 이제 뉴페이스가 아니라 직업정치인이다. 직업정치인은 이길 때도 있지만 질때도 있다. 한번 졌다고 사라진다면 프로가 아니다. 그러면서 정치를 배우고 국민이 말하는 것들을 비로소 듣게 되기 때문이다. 흔히 정치 9단이니 하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정치적 덕목이 있다.

바로 은인자중하는 모양새다. 자신의 실패를 분석하고 몸을 낮춰 다음을 기약하는 정치적 처세술이다. 만덕산에 들어가라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서 잊혀지라는 얘기도 아니다. 정치적 입장을 활성모드에서 스텔스 마케팅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실패한 정치인이지만 국민들이 언젠가 그가 필요할때 다시 호출하게 된다. 하지만 지난 19대 대선 이후 그의 행보는 은인자중과 거리가 멀었다.

대신 절치부심의 분한 심정으로 곧바로 지방선거 무대에 무리하게 뛰어 들었다. 이런 모습은 국민들에게 지난 대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듯한 인상을 풍겼다. 문재인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에 그쳤다.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제 그가 은인자중한다고 정치력이 회복될지 미궁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다시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 누가 안철수를 정치무대로 불러냈는가? 바로 국민들이다. 새정치를 원하는 젊은 유권자들. 표를 던질 곳이 마땅하지 않은 중도보수, 그리고 김대중 이후 양당체제가 못마땅한 호남의 민심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세가지 국민적 부름에 단 한번도 호쾌한 답을 던져주지 못했다.

안철수 하면 '새정치'가 먼저 떠올랐음에도 국민의당 분당과 바른미래당 공천 파동 등을 거치며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국민적 부름은 상당부분 철회되었다. 게다가 이번 선거과정에서 정치입문 7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전문가들조차 그의 정치적 미래를 섣불리 예단하지 못하는 이유다.

좋은 정치가가 되는데 외모나 학력, 신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정치권 입문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가문이 좋거나 경제적 능력이 탁월하다고 곧바로 정치입문이 되는 세계가 아니다. 그런면에서 볼때 안철수는 국민적 호출로 큰 특혜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처음 정치를 입문할 때 절차를 밟고 차근차근 입문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혜성처럼 등장했다. 국회의원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 당 대표까지 하고 일사천리로 서울시장 후보까지 올랐다. 이후 유력대선주자까지 한번에 올라선 정치아이돌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또 다시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수도 있을 그가 이번에도 은인자중의 태도를 무시할지 지켜볼 일이다.

사실 안철수는 국민들이 키워낸 정치벤처다. 국민들은 그의 주식을 사며 그 벤처가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을 선사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권력 욕망과 정치적 판단미숙으로 벤처의 운명을 위태롭게 한다면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정치계 모두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조금은 늦었다 하더라도 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한번쯤 숙고하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적 관심이 높을수록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욱 처신을 올바르게 해야하는 정치가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최승희(사진작가/칼럼리스트)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