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6.17 06:18

김상조, SI·물류·부동산관리·광고 등 꼭 집어 "지분 팔아라" 경고

<그래픽=뉴스웍스>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행위를 해소하지 않으면 엄정한 조사와 제재에 들어가겠다며 주요 대기업에 경고장을 날렸다. 특히 법적 기준이 없어도 조사권을 행사할 뜻을 밝히면서 규제기준을 턱걸이하며 내부거래 비중을 높여왔던 4대그룹에 빨간불이 켜지게 됐다.

김 위원장은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지배 주주 일가가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발생하는 만큼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 달라”고 말했다. 총수일가의 사익을 위한 계열사 지분을 스스로 정리하고 내부거래를 끊지 않으면 칼을 빼들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어 김 위원장은 그룹 핵심업무와 관련없는 SI(시스템 통합),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의 계열사를 타깃으로 정하고 “총수일가가 이들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총수일가의 지분을 팔아야 하는 대기업 비핵심업종을 콕 집어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등의 대기업 계열사들은 그간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수단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총수일가가 이들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뒤 그룹 일감을 몰아줘 승계구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무너뜨린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해당 업종과 관련된 계열사들을 보유한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그룹은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다. 이날 김 위원장은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사익 편취, 부당 지원 혐의가 짙은 기업부터 공정위 조사와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특히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삼성SDS, 현대오토에버, 현대글로비스, SK C&C사업부문, LG 판토스 등 4대그룹 SI 및 물류 계열사들은 당혹감에 빠진 모습이다. 공정거래법 상 총수일가의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이면서 내부거래가 200억원 이상이거나 매출의 12% 이상이면 규제를 받게 된다.

이미 4대그룹 대부분은 공정거래법 상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 저촉되지 않도록 지배구조 개편을 완료했거나 마무리하는 단계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꼼수로 규제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 공정위의 칼날을 피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기업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정위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대기업 계열사는 무려 10곳이 넘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비상장 계열사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국내 내부거래액이 1조8080억원에 달해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 87.0%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보유한 지분율은 19.47%로 기준인 20%에 살짝 못 미쳐 규제를 빠져나갔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의 SI업체로 계열사 IT서비스 일감을 받아 운영되는 곳이다.

현대차그룹의 상장 물류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도 총수일가 지분율 29.99998%를 기록해 규제기준인 30%를 절묘하게 넘지 않았다. 현대글로비스의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은 20.7%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0.000008%만 넘었더라도 공정위의 규제대상에 속한다.

LG그룹의 물류를 담당하는 비상장 계열사 판토스도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19.90%에 달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규제를 피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69.6%에 달하는 판토스는 LG의 후계자인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지분을 7.5% 갖고 있어 경영승계를 위한 상장이 거론되기도 한 곳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그룹의 SI 계열사인 삼성SDS는 이건희 회장(지분율 0.01%)과 이재용 부회장(9.20%), 이부진·이서현 사장(각 3.90%) 등 총수일가가 지분을 총 17.01% 보유하고 있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이 부회장의 주식 가치는 1조6000억원이 넘고 총수일가 전체로 보면 약 3조원이다.

특히 지난해 삼성SDS의 국내 매출 기준 내부 거래 비중은 77%이지만 총수일가 지분이 기준인 30%를 넘지 않아 규제를 빠져나갔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주요 대기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부거래 비중을 최대로 끌어올려 공정위의 제재를 피해왔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법으로 강제할 수 없어도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만큼 대기업들은 해법 마련에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