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6.23 06:00

1.6L 엔진에도 주행성능 '합격'…상품성 높지만 비싼 가격표는 '부담'

쉐보레 이쿼녹스. <사진제공=한국지엠>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심각한 판매부진에 시달리며 존폐기로에 놓였던 한국지엠이 간만에 천군만마를 얻었다. 국내 SUV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데도 트랙스 하나로 버텼던 한국지엠은 용병을 들여와 극적인 반전을 노린다. 

새로운 용병은 경쟁자들의 날카로운 창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기존 전력들과 달리 막강한 전투력을 갖췄다. 용병답게 상당히 비싼 가격이 흠이지만 전력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장수인 점은 분명해 보였다.

경영 정상화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쉐보레 중형 SUV '이쿼녹스‘다. 지난해부터 출시설만 무성했던 이 용병은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인 중형 SUV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과연 수렁에 빠진 한국지엠을 건져낼 능력을 갖췄을까?

비록 짧은 시승이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쿼녹스는 실내공간, 주행성능, 연비, 편의옵션까지 비록 미국 태생이지만 한국인의 니즈를 족집게처럼 충족시켰다. 단 이미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경쟁차종들보다도 비싼 가격이 매겨진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에 시승한 이쿼녹스는 최상위 트림인 프리미어 등급에 전자식 AWD 시스템이 추가된 모델이다. 판매가격은 4092만원에 달하지만 상품성만큼은 중형 SUV 시장을 장악한 싼타페TM과 쏘렌토보다 뒤처질 것이 없어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심장병’에 대한 우려가 시승 한 번으로 깨끗하게 씻겨나갔다는 점이다. 이쿼녹스는 최대출력 136마력과 최대토크 32.6kg.m의 힘을 내는 1.6리터 에코텍 디젤 엔진에 3세대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 파워트레인이 적용됐다.

1.6리터 엔진은 보통 준중형 승용디젤이나 소형 SUV에 주로 쓰인다는 점에서 출시 전부터 우려가 상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싼타페TM과 쏘렌토만 하더라도 2.2리터와 2.0리터 엔진을 얹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작은 엔진은 상대적으로 큰 덩치의 차체를 생각보다 경쾌하게 이끌었다. 초반 토크가 좋은 디젤엔진답게 정지상태에서 가속도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시속 160km 이상의 초고속 영역에서는 호흡도 꽤 거칠어지고 힘에 부친 느낌이 역력하다. 액셀레이터를 끝까지 밟더라도 시속 180km까지 도달하는데는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 차가 빠른 속도를 즐기기 위한 차가 아닌 가족을 위한 ‘패밀리 SUV’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만족스러운 운동실력이다. 주로 쓰이는 시속 80~120km 구간에서는 이렇다 할 출력부족이 느껴지지 않았다. 엔진이 다운사이징됐지만 그만큼 경량화된 덕을 본 듯했다.

특히 경량화된 차체와 엔진 덕분에 연비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복합연비 13.3km/L의 이쿼녹스는 왕복 약 100km 구간을 주행하는 동안 12.8km/L의 평균연비를 기록했다. 차의 동력성능을 알아보기 위해 다소 높은 RPM을 썼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이쿼녹스는 경량화 외에도 공기저항을 줄여 연료효율을 확보했다. 동급 최초로 탑재된 에어로셔터는 고속 주행 시 그릴을 닫아 전면부 공기저항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쉐보레 이쿼녹스의 외관 디자인,. <사진=박경보기자>

이쿼녹스의 또 다른 매력은 쉐보레 같지 않은 ‘풍부한 편의사양’이다. 기존 한국지엠 차종들이 “비싼 데도 옵션이 빈약하다”고 지적 받았다면 이쿼녹스는 비싼 만큼 옵션이 좋다.

랙타입 프리미엄 전자식 차속감응 파워스티어링(R-EPS)은 보다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코너링 감각을 제공했고, 비록 200만원 상당의 선택옵션이지만 전자식 AWD는 빗길과 빙판길, 험로 등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뒷좌석 원터치 폴딩 시스템, 핸즈프리 테일 게이트, 트렁크 레벨링 메모리, 평평한 2열 실내바닥, 1열 파워 요추받침, 2열 리클라이닝 기능, 스마트폰 무선 충전시스템, 220V 인버터 등의 풍부한 편의사양을 갖췄다. 운전자는 물론 함께 탑승한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옵션들이다.

특히 이쿼녹스는 패밀리카답게 최첨단 안전사양들로 무장해 가족들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다. 이쿼녹스의 안전사양 가운데 가장 압권은 GM의 특허 기술인 햅틱시트(무소음 진동 경고 시스템)다. 고급브랜드인 캐딜락에 적용된 이 기술은 경고음 대신 시트 쿠션의 진동으로 운전자에게 경고를 보내기 때문에 동승한 가족들의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주행하면서 앞차와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질 경우 시트가 조용하게 진동경고를 보냈다.

이쿼녹스는 이 밖에도 저속자동긴급제동시스템, 전방거리감지시스템, 전방충돌경고시스템, 후방주차보조시스템, 후측방경고시스템뿐만 아니라, 사각지대 경고시스템, 차선이탈경고시스템, 차선유지보조시스템 등 전방위 안전 사양을 대거 탑재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호화스러운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에도 정작 반자율주행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다. ‘당연히’ 반자율주행기능을 지원할 줄 알고 스티어링휠을 손에서 떼어보니 차선에 맞게 따라가지는 못했다. 단지 차선을 넘지 않도록 강제로 차를 밀어 넣는 듯한 인상이다.

쉐보레 이쿼녹스의 실내공간. <사진=박경보기자>

한편 100km 구간의 시승을 마치고 다시 실내공간을 훑어봤다. 싼타페TM과 쏘렌토보다 다소 좁을 것이란 선입견과는 달리 실내공간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르노삼성의 QM6와 비슷한 크기지만 2열 리클라이닝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간 활용능력은 확실한 우위를 점한 모습이다.

◆ 총평

이쿼녹스는 상품성만 놓고보면 크게 부족한 부분이 없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무늬만 국산차인데도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들을 대거 적용해 구매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넓은 실내공간, 효율적인 연비, 낮은 소음, 다양한 편의사양과 안전사양 등 국내 소비자 입맛에 철저히 맞췄다. 하지만 2987만원~3892만원에 이르는 가격표는 자꾸만 아쉽게 느껴진다. 불필요한 고급옵션을 제외하고 저렴한 가격을 책정해 불티나게 팔리는 렉스턴스포츠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이쿼녹스가 국내 시장에서 넘어야할 가장 큰 산은 경쟁자들이 아닌 자신의 가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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