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6.27 13:16

"왜 '리콜' 안시키나" 소비자들 반발...전문가 "품질문제도 대상 포함해야"

더 뉴 쏘렌토 <사진제공=기아자동차>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현대‧기아차의 핵심차종인 쏘렌토‧투싼‧스포티지 등에서 발견되는 ‘에바가루’ 문제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무상수리 권고’ 결정을 내렸다. 리콜이 아닌 수리권고 조치가 내려지자 그 동안 리콜을 요구하던 소비자들의 성토가 빗발치는 모습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적된 결함인데도 국토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부는 현대‧기아차의 쏘렌토UM 등에서 발생한 에어컨 송풍구 에바가루 분출 현상에 대해 공개 무상수리를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국토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쏘렌토를 비롯해 스포티지(QR), 투싼(TL) 등 3개차종 39만여대의 에바포레이터(에어컨 증발기 주변의 열을 흡수해 찬공기를 만드는 장치) 불량으로 에어컨 가동시 백색가루가 분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가 차량에서 검출된 백색가루를 성분 분석 전문기관인 한국세라믹기술원에 의뢰한 결과 주 성분이 ‘수산화알루미늄’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산화알루미늄은 주로 유리, 종이, 인쇄잉크, 계면활성제, 방수천 등에 쓰이는 물질이다. 식약계에 따르면 수산화알루미늄이 포함된 분진을 장기간 흡입할 경우 비결절성 폐섬유증, 기종, 기흉, 드물게 뇌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쏘렌토 동호회를 중심으로 이같은 불량을 꾸준히 지적해 왔지만 그 동안 국토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법상 리콜 대상은 ‘안전’에 지장을 주는 제작결함에만 해당해 법적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자동차부품이 자동차안전기준 또는 부품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발견돼야 리콜이 가능하다. 하지만 에바가루 문제는 자동차 안전에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리콜이 어렵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앞서 국토부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는 지난 14일 에바가루 문제가 리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고 무상수리 권고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는 “안전에 직결된 문제만 리콜할 수 있는 법의 한계로 품질문제는 리콜대상이 되기 힘들다”며 “소비자들은 서운하겠지만 미국 등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리콜에 준하는 무상수리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아차도 국토부 권고 이전부터 무상수리를 실시해왔고 최근 제품들은 개선된 에바포레이터를 사용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그동안 쏘렌토에 대해서는 에바가루 문제를 호소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무상수리를 해왔고 이번 국토부 권고는 투싼과 스포티지까지 확대된 것”이라며 “식약처 등에 따르면 에바가루의 성분은 발암물질이나 독성물질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쏘렌토는 2017년 2월식 이후로 개선품을 쓰고 있어 더 이상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이후 보고된 사례들은 에바가루가 아닌 일반먼지인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쏘렌토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에바가루 결함증상. <사진출처=쏘렌토 온라인 동호회>

이렇듯 국토부와 기아차가 문제 진화에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못하고 있다. 제조사 중심의 리콜기준과 제조사의 안일한 대응으로 소비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쏘렌토 온라인 동호회에는 하루 수차례씩 에바가루 문제를 호소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주로 차량 구입 후 1년 여쯤 지난 뒤 에바가루 배출이 심해진다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특히 패밀리카인 쏘렌토 특성상 소비자 대부분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기 때문에 가족 건강을 위협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에바가루 관련 리콜을 촉구하는 수십여건의 청원글이 올라온 상황이다.

서영진 YMCA 자동차안전센터 간사는 “에바가루 문제는 이번 무상수리 권고대상 이외에도 K7, 그랜저 등 다양한 차종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에바가루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의 면밀한 조사로 리콜을 실시하거나 대상차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에바가루가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데도 국토부 제작결함심사평가위는 늑장을 부리다 이제야 무상수리 권고를 내렸다”며 “국민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리콜을 강력히 추진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커진 뒤 뒷북을 칠 것이 아니라 리콜기준을 선제적으로 손봐 국민건강과 안전을 보호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김 교수는 제조사인 현대‧기아차에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교수는 "흉기차로 불리는 현기차는 제작결함을 쉬쉬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며 “가뜩이나 수입차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만큼 발 빠른 대처로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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