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윤희 기자
  • 입력 2018.07.23 19:38

최승희(사진작가/칼럼리스트)

다모토리(최승희)

2018년 7월 23일 오전 안타까운 비보가 전국에 전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남산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으로 인한 특검수사의 압박이 투신의 이유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유서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사망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노회찬 의원이 충분히 법리적으로나 도의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투신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은 그를 사랑하고 지지한 국민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죽은 자는 한 순간이지만, 산자는 끈질기다는 말을 한다. 산자들 중에서도 불법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착복해온 일부 정치인들과 재계 기득권 세력들은 끊임없는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대가성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데, 노회찬 의원은 청탁과 대가성이 불분명한 몇 천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만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은 날계란으로 태산을 치는 심정으로 온 몸을 던져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를 위해 정치활동을 해온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다. 그런 정치철학을 가진 이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는지가 절절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의 정치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짤막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떨어진 직후, 노 의원은 우연히 길에서 지역구 주민이자 평소 자신의 열성적 지지자인 젊은 부부를 만났다. 그런데 그 부부가 노 의원에게 자신들은 노 후보가 당선돼 정치인이 될까 봐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심 떨어졌으면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실제로 노 후보가 선거에서 떨어지니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회찬 의원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면서 깜짝 놀랐지만 그 부부가 무안해 할까 봐 웃으면서 "제가 정치인이 되어야지 아니면 왜 출마했겠어요. 그럼 누굴 찍으셨어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부부는 당연히 노회찬 씨를 찍었다고 말했다. 노회찬 씨를 신뢰하고 지지하지만 그래도 그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기존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그 복잡한 심리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때 노회찬 의원은 국민들에게 정치를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노회찬 의원은 평생 동안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反정치주의'와 온몸으로 싸워 온 정치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살아있어야만 유효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내려놓은 채 극단적 선택을 강행한 이유는 국민들에게 정치민주주의를 설득할 마지막 무기를 잃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사과하고 그에 맞는 법적절차를 거쳐 다시 정치적 재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청렴결백한 진보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 이번 드루킹 정치자금 의혹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 그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을 대변해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가진 칼을 잃어버린 순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노회찬이 정치인이 되면 다른 부패한 정치인들처럼 오염될까봐 두려워했다는 어느 부부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드루킹 정치자금의 소명보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소식이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는 서민들과 가난한 자영업자들 그리고 거대한 갑의 압박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바램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그 바램을 들어줄 진정성 있는 정치인 한 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진실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정치를 옳고, 바르고, 기대할 수 있는 사회적 통합으로 만들어나갈 정치인 한 명이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저자 박상훈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선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고, 또한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우리는 삶의 조건을 바꿔보려는 적극적 사회 개혁의 의지를 견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 현실 속에서도 바람직한 정치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의 세계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또 정치가 제공하는 긍정적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누구에게 기대를 걸까를 즐겁게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저자의 질문을 어제의 노회찬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이런 답을 받아내고 싶다. 정치는 반드시 살아있어야만 가능한 인간의 행위이며, 당신이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좋은 정치를 실천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절대 죽음을 택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