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23 17:36

중국의 충청도 기질

'중국의 금강산'으로 꼽히는 황산(黃山)이 있는 안후이의 남부 전통 촌락 모습이다. 안후이는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지역으로 사람들 기질 또한 느긋한 편이다. 그러나 전쟁이 오래 불붙어 불세출의 전략가와 경략가들을 배출했다.

안후이와 서쪽으로 이어져 있는 지역이 후베이(湖北)다. 신해혁명의 발발지였던 우창(武昌)이 있던 곳이다. 이 후베이 사람들은 영악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잔꾀로 사람들을 속이는 하늘의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이 구두조(九頭鳥)라고 했다. 이름 그대로, 머리가 아홉이 달렸으니 매우 영리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후베이 사람들에게 이 구두조의 ‘약발’은 먹히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생긴 말이 “하늘에는 구두조가 있고, 땅에는 후베이 사람들이 있다”다. 천상의 머리 좋은 새에 못지않게 후베이 사람들의 꾀가 발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판본에서 한 걸음 더 나가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후베이 사람 아홉이 안후이 사람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다.

새 버전의 이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말을 후베이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쳇, 그런 말이 어딨어”라며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구석도 있기는 있지”라며 웃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하늘의 머리 아홉 달린 구두조를 상대할 만큼 약다고 하는 후베이 사람 아홉 명이 모여도 안후이 사람 하나를 제대로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말에 담긴 진정한 뜻은 후베이 사람처럼 안후이 사람이 매우 영악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직하면서 속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며, 나름대로 고집스럽게 제 할 일만 하는 안후이 사람의 특성을 얘기하는 측면이 크다.

그런 점에서 안후이 사람들은 한국의 충청도 사람들과 기질이 비슷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충청도 또한 북쪽의 고구려 세력과 남쪽의 신라, 그리고 백제 세력이 힘을 겨뤘던 고대의 큰 전장(戰場)이었다. 중국 중원에서 남쪽으로 뻗으려는 세력이 회수를 넘으며 그곳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남쪽의 세력과 벌인 모질고 긴 전쟁의 현장이 안후이라는 점에서 둘의 환경은 비슷하다.

그래서 전체적인 인상으로 볼 때 안후이 사람들은 인근의 사람들에 비해 무색무취(無色無臭)에 가까운 편이다. 후베이와 후난(湖南) 사람들이 강렬한 개성을 뽐내는 데 비해 안후이는 독특하다 할 만한 성향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좀 더 영악해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경우에는 순박하면서 어리석다는 인상을 주곤 한다.

느려 터진 듯이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닌 충청도 사람과 어딘가 많이 비슷해 보인다. 함부로 제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과 끈기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충청도 기질도 안후이 사람들이 품은 인문적 특성과 아주 가까워 보인다.

아울러 안후이는 중국 동남부 지역에서 경제발전이 가장 더딘 지역이기도 하다. 농업만 발달했지, 내세울 만한 산업이 없다. 그래서 상하이 등 인근 대도시에 나아가 궂은일에 종사하다 보니 대도시 지역 사람들로부터 “시골뜨기”라는 핀잔을 얻어 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그런 시선으로만 안후이를 관찰하면 큰 코 다친다. 귤이 탱자로 변하는 이곳은 남북의 부딪힘이 강렬한 만큼 남과 북의 문화가 커다란 범위에서 융합하며 두꺼운 문화적 앙금을 내려 앉히는 곳이다. 따라서 그 문화적 토양 속에서 자라난 인물은 심모원려(深謀遠慮)의 책략가, 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경략가(經略家)의 속성을 띠게 마련이었다.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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