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은 회장 "빈 볼펜 60자루 갖고 여친 만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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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은 회장 "빈 볼펜 60자루 갖고 여친 만났더니..."도전과 나눔 '기업가 정신 포럼'서 강의
  • 문병도기자
  • 승인 2018.08.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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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이 도전과 나눔이 개최한 제 2회 '기업가 정신 포럼"에서 강의하고 있다.

[뉴스웍스=문병도기자]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망가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이 점점 부끄러워졌어요. 그러던 2015년 말에 결심했습니다. 내 재산을 내놓으면 약간은 만회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2016년 청년 창업 지원을 위해 300억 원을 출연하고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한다.

손 회장이 도전과 나눔에서 개최한 제 2회 기업자 정신포럼에서 '나는 왜 스타트업을 지원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창업과 인생스토리를 풀었다.

1961년 태어난 경남 창원시에서 태어는 그는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이름도 이름도 주(主)님의 은(恩)혜의 줄임말일 정도다.

그는 어릴적 떡볶이를 즐겨 먹었다. 학교 앞에는 10원을 내면 떡볶이 10개를 먹을 수 있는 노점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어느날 그는 11개를 먹었다. 그리고 6학년 때 12개를 먹었다. 손 회장은 "그후 그 것 때문에 수많이 고민했다. 청교도적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며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부산에서 창원까지 찾아가서 노점 주인 할머니한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20원을 드렸다. 그 때 아주 큰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하고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게 학원강사였다. 20명을 혼자서 일주일 내내 스파르타식을 가르쳤다. 체질에 맞아서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었다. 90년대 초반 월 4000~5000만원씩 벌었다.

그러던 중 1996년 고민이 생겼다. 사회 윤리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이다. 소수의 강남 부잣집 애들 가르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마음에 걸렸다.

그는 "강남 부잣집 자녀를 공부시켜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는 뒤로 밀려날수 밖에 없게 된다"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고민하다 학원을 접었다.

처음에는 사교육계 떠날려고 했다. 하지만 대중 강의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3만원, 5만원이면 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 적게 받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강의를 만들었다. 깨끗하게 살고 싶었다.

그는 1997년 2월 첫 강의를 개설했다. 10개반 모집했는데 3개반에 겨우 8명만 신청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가르쳤다. 첫달 월급이 32만원이었다. 하지만 개인 윤리적으로나 사회 윤리적으로나 떳떳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5개월 만에 20개반, 2000명이 꽉찬 것이다. 이후 매달 5000명씩 가르쳤다. 월 4억을 벌었다.

그는 창업과 연결시켜 준 계기가 볼펜 한자루에 있다고 말한다. 볼펜 한자루 때문에 아주 특이한 경험을 했다.

1977년 10월 초에 손 회장은 풋내기 첫사랑을 경험한다. 마음에 품은 그녀에게 용기를 내서 편지를 보냈다. 보름만에 답이 왔다. 빵집에서 우유 한 잔에 단팥빵을 먹으면서 만났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리고 두 달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 기간을 기다리기 힘들었다. 그녀 생각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공부와 사랑의 접점을 찾아야 했다. 공부하는 것이 곧 너를 사랑하는 행위로 되게 했다. 그는 공부에 매달렸다. 하루에 볼펜을 한자루씩 쓰기로 했다. 쉬지 않고 8시간을 쓰면 모두 닳게 된다. 연습장 50~60장 써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60자루의 볼펜을 갖고 그녀를 만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 녀 앞에 내놓았다. 그랬더니 그녀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뭐 이런 선물을 가져왔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뒤 그녀와 헤어졌다.

볼펜 한자루의 기억은 또 있다.

87년 4월에 첫 과외를 했다. 엄청난 부잣집이었다. 아버지가 의사였다. 그런데 으리으리한 방에 어울리지 않는 키 작고 못 생겼고, 불만 가득한 여학생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책상을 탁 치면서 "내가 아직 과외비 안 받았다. 일단 5분만 내 얘기 부터 들어보라"고 했다.

그 여학생에게 "앞으로 너는 창녀보다 못한 인생을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창녀는 화대라고 받지 너는 돈 갖다 바치면서 팔려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유학가거나 학력 세탁해가지고, 그리고 살 빼고 성형해서 의사 사위한테 팔아먹을 거라로 말했다. 그랬더니 여하생이 그를 쳐다보면서 "마음에 든다"로 했다.

제대로 해보자며 볼펜 한자루씩 써가면서 공부했다. 그랬더니 8월에 전교에서 15등까지 올랐다. 그 여학생은박사과정을 밟던 중 행정 고시 준비해서 1년 반만에 합격했다. 지금은 세종시에서 과장을 하고 있으며 곧 3급이 된다고 한다.

군대 갔다 와서 86년 7월 3일에 결혼했다. 집에서 용돈 받아 생활했다. 87년 2월 24일에 아내가 쓸 돈이 3만원밖에 안남았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궁하면 답이 보인다. 이튿날이 서울대 졸업식인데, 졸업식날 커피를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과 동생 친구까지 불러서 종이컵 사서, 물을 끓여서 갔다. 커피 포트 10개 들고 졸업식에 갔더니 40여개팀이 프로판가스까지 준비해서 진을 치고 있었다. 장사를 접어야 하나?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동력을 살렸다. 대운동장을 이곳 저곳을 빠르게 옮겨 다니면서 커피를 모두 팔았다. 1시간 30분만에 완판, 1만원 투자했는데 15만원 벌었다. 인생의 첫 창업이었다.

손 회장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성공지향적"이라고 지적했다. 성공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하고,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겠다고 생각한다. 성공>일>삶의 순서다. 왜곡된 부등식이다. 그는 "이 부등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삶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 그렇해 해서 성공이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삶>일>성공, 이것이 인생의 부등식이다. 우리 세상이 바뀌고 젊은이가 젊은이 다울 수 있고, 창업의 본질에 다가갈수 있다.

문병도기자  do@newswor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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