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24 14:44
당나라 유명 문인 유종원(柳宗元)의 시 '강설(江雪)'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다. 홍진이 가득한 세속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차분함을 회복해야 할 때가 세밑이다. 겨울의 차가운 강과 눈속에서 낚시를 드리우는 마음의 평정이 시에 잘 드러나 있다.

 

세속을 일컬을 때 우리는 이 홍진(紅塵)이라는 낱말을 자주 사용한다. 붉은 먼지? 우선 그런 새김으로 다가온다. 직접 그렇게 풀어도 큰 잘못은 없다. 원래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고 물자의 이동이 활발한 번잡한 도시를 가리켰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잦으면 먼지는 자연스레 피어오르니까 그렇다.

紅(홍)은 중국인들이 예부터 매우 좋아했던 색깔이다. 그 붉음은 생명, 활기, 행복을 가리킨다. 뒤의 塵(진)은 사슴을 가리키는 鹿(록)과 흙을 의미하는 土(토)의 합성이다. 한자 초기의 생김새는 사슴이 두 마리 이상 모여 있는 모습이다. 게다가 흙(土)이 가세하면서 사슴들이 마구 뛸 때 일어나는 ‘먼지’라는 새김으로 자리를 잡았다.

홍진(紅塵)은 따라서 사람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이는 흙먼지라는 뜻이 우선이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곳에는 이해관계와 은원(恩怨)이 서로 얽히면서 온갖 풍파가 일어난다. 그런 세상살이가 반드시 행복하거나 여유로울 수는 없다. 따라서 종교적인 심성으로 바라보면 그곳은 번잡함으로 벌어지는 온갖 번뇌의 집합 장소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홍진(紅塵)이라는 낱말은 먼지 이는 시끄러운 세상, 번잡함이 퍽 많은 갈등과 번민으로 번지는 곳, 그래서 때로는 그로부터 떨어져 마음의 고요를 회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새김도 챙겼다. 진세(塵世)라고 적으면 먼지 이는 세상이어서, 홍진과 다름이 없다. 진범(塵凡), 진간(塵間), 진환(塵寰) 등도 마찬가지 뜻이다.

인간(人間), 속세(俗世), 속진(俗塵), 범간(凡間), 세간(世間), 진계(塵界), 진경(塵境) 등도 마찬가지 맥락의 조어에 해당한다. 풍진(風塵)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바람(風)과 티끌(塵)의 합성인데, 바람 속 먼지 또는 세상살이의 시련과 어려움 등을 가리킨다. 비슷한 맥락으로 미 록밴드 캔사스가 노래한 ‘Dust in the wind’가 있으니 바람, 먼지, 세속의 번잡함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정서는 비슷한 모양이다.

마침 중국에서 이뤄진 거대한 스모그가 한반도에 닥치면서 미세먼지가 요즘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세밑이라면 번잡함에서 잠시 비켜나 내 세상살이의 지향이 옳은지 그른지를 조용히 따져야 할 때다. 새해를 알차게 열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여기에 시 한 수 소개한다. 당나라 문인이며 산문에서 크게 이름을 떨쳤던 유종원(柳宗元)의 ‘江雪(강설)’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시다.

 

千山鳥飛絶(모든 산에 새가 날지 않고)

萬徑人踪滅(온 길에 사람 모습 없는데)

孤舟簑笠翁(한 척 배에 도롱이 걸친 늙은이)

獨釣寒江雪(찬 강과 눈에서 홀로 낚시하네)

 

모든 산(千山), 온 길(萬徑)과 한 척 배(孤舟), 홀로 낚시(獨釣)가 대조를 이루는 시다. 해석은 나름대로 다양하게 할 수 있지만, 차가워진 겨울의 연말에 한 번 떠올리면 좋은 시다. 주변의 모든 환경이 주는 번잡함을 누르고 홀로 고적(孤寂)함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내면과 지향을 이 세밑의 길목에서 점검해 보면 어떨지.

 

<한자 풀이>

塵 (티끌 진): 티끌. 때, 시간. 유업. 소수 이름. 더럽히다. 묵다.

寰 (경기 고을 환, 고을 현): 경기 고을(천자가 직할하던 영지). 대궐 담. 천하. 인간 세상. 에워싸다. 고을(현).

徑 (지름길 경, 길 경): 지름길, 질러가는 길. 길, 논두렁길. 지름, 직경. 마침내. 곧바로, 바로. 가다, 길을 가다. 건너다, 건너서 가다. 지나다, 지나가다. 곧다, 바르다, 정직하다. 빠르다.

踪 (자취 종): 자취, 발자취. 사적. 흔적. 폭, 권, 서화를 세는 단위. 좇다. 뒤따르다. 놓다.

簑 (도롱이 사, 꽃술 늘어질 쇠): 도롱이(짚, 띠 따위로 엮어 두르는 비옷). 덮다. 꽃술이 늘어지다(쇠).

釣 (낚을 조): 낚다. 낚시하다. 유혹하다. 탐하다. 구하다. 낚시.

 

<중국어&성어>

千山鳥飛絶 qiān shān niǎo fēi jué

萬徑人踪滅 wàn jīng rén zōng miè

孤舟簑笠翁 gū zhōu suī lì wēng

獨釣寒江雪 dú diào hán jiāng xuě

 

紅塵 hóng chén: 중국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쓰임새는 우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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