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태기 교수
  • 입력 2018.08.27 10:19
김태기 단국대 교수

소상공인 총궐기의 날(29일 예정), 생소한 날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사람이 영업을 포기하고 집회에 나갈 정도라면 사태가 심상치 않다. 소상공인은 최저임금인상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절규한다. 정부가 이들의 분노를 달래지만 오히려 더 화나게 만들고 있다. “세무조사 하지 않는다.”, “지원 늘린다.”는 달콤한 처방보다는 최저임금인상정책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대차, 카드수수료, 프랜차이즈 문제 등 대기업과 자산가의 팔을 비틀어 소상공인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이야기도 동문서답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문제야 정부가 해결할 수 있지만 임대차 등은 그렇지 못하고 훨씬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정부는 최저임금인상정책을 유지할 자세다.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인상의 부작용을 일축하고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고통을 모르거나 아니면 아예 소상공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9988! 사업체의 99%와 고용의 88%가 소상공인을 포함함 중소기업이라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정치적 위상은 크지만 경제적으로는 영세하고 존립이 흔들린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정부는 소상공인의 절규를 중소기업인 모두의 절규로 확대시킬 가능성만 키웠다.

한국은 지난 30년 동안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찌그러져 자영업화 되었다. 법과 재정으로 중소기업 지원과 보호를 확대했지만 영세화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약화된 근본적인 이유다. 반면, 선진국은 한국에 비해 중소기업의 고용비중이 훨씬 낮지만 생산성은 훨씬 높다. 한국은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대기업의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매우 크다. 중소기업은 거의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속하는데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제조업의 1/3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격차는 더 심각한 문제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영업의 고용비중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영업에 종사하던 사람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처음에는 감소했다가 반전되어 지금 1/4이 넘어 선진국에 비해 비중이 2-3배 높다. 직접적인 이유는 노동시장 경직화에 있다. 대기업의 임금은 노동조합 덕분에 빨리 오르고 경기가 나빠도 하락하지 않았다. 대기업 노동시장이 경직화되면서 대기업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많아졌지만 중소기업 취업을 피하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대기업 퇴직자는 물론 청년들도 중소기업 취업보다 자영업 창업에 몰리면서 과당 경쟁이 투자 원금도 찾지 못하고 폐업하게 만들었다. 이러면서 자영업은 창업과 폐업의 악순환 속에서 빈곤화되었다.

소상공인이 절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최저임금결정 등을 결정하는 정책 무대가 소상공인 등 중소기업에 불리하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영세화와 자영업의 빈곤화를 뻔히 알면서도 최저임금을 과도하게 올렸다. 최저임금인상을 차등화하자는 중소기업의 요구는 뿌리치고 대기업정규직 근로자에 유리한 최저임금제도 개정에는 소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인상으로 일자리의 질을 높인다며 영세한 중소기업과 빈곤한 자영업에 부담을 떠넘겼다. 일자리 악화의 원인이 되는 대기업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거론조차 하지 않고, 중소기업에게는 산소호흡기로 생명연장해주는 식의 생색내기 지원이나 했다. 최저임금인상은 소득격차를 야기하고 내수 경기를 악화시켜 소상공인들이 이중의 고통을 보게 만들었다.

기울어진 정책무대는 최저임금만이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도 그렇다. 근로시간제도가 대기업제조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다 보니 중소기업서비스업은 불리해 근로시간단축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대기업과 제조업에 비해 고객의 니즈 충족 등의 이유로 유연성의 확보가 중요한데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의 일률적인 적용은 손해를 더 키운다. 근로시간단축(52시간)이 아직 중소기업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시행에 들어가면 중소기업 사업주는 인건비 증가로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는 소득 감소로 고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기업은 설 땅이 더 좁아지면서 자영업화 되는 모순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근로시간정책에는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배려가 없다.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산업정책 실종도 기울어진 정책 무대의 결과다. 이것은 노동정책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사회정책만 있고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정책은 없다. 지원과 보호정책은 효과가 일시적이고 세계화와 기술혁신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대기업과 제조업은 환경 변화에 맞게 수출 경쟁력을 키우도록 지원을 체계화했지만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비효율적인 지원체계는 방치했다. 산업에 대한 규제 또한 마찬가지다. 대기업과 제조업을 염두에 두고 만들기 때문에 기준이 높아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따라가기 힘들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에 불리한 정책 무대는 선진국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쭉쭉 커가는 동안 한국은 제자리걸음하게 만들었다.

정책은 이해관계 집단과 정부가 벌이는 협상의 산물이다. 정책 협상 무대는 정치가 결정한다. 협상 무대의 참가여부나 협상력은 정치에 좌우된다. 정책 협상 무대에 제조업과 대기업은 영향력이 큰 반면,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은 협상 무대에서 배제되어 있고 참가해도 영향력이 작다. 주된 이유는 수출정치와 노동정치에 있다. 제조업과 대기업은 수출에 치중하고 수출 성과는 금방 나타나 실적이 좋지 않으면 정치는 불신을 받는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에는 대기업과 제조업의 노동조합이 조직화된 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반면,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은 정책이 성과를 거두는데 시간이 걸리고 특성상 조직화하기가 어려워 정치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기업과 제조업에 유리한 수출정치와 노동정치를 견제할 수 없다.

한국은 특이하게 헌법에서 중소기업 지원과 보호를 규정한다. 경제민주화로 포장하지만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육성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경제민주화가 결과 평등주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이 크기가 더 어렵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을 진짜 육성하려면 기울어진 정책무대를 바꾸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각성과 함께 정책 무대를 편편하게 만들도록 정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기울어진 정책 무대를 편편하게 만드는 것이 소상공인의 절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다. 시작은 최저임금제도 개편이다. 최저임금과 관련성이 낮은 대기업 근로자를 대변하는 노동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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