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9.01 06:20

진보한 반자율주행기능 압권…기아 엠블럼은 '양날의 검'

기아자동차 신형 K9.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지난 2012년 첫 선을 보인 이후 6년 만에 풀체인지된 기아차의 ‘더 K9’이 출시되자마자 대형 고급차 시장의 판도를 뒤엎고 있다. 판매 첫 달인 4월 1222대를 기록하더니 5월 1705대, 6월 1661대 등 전작의 판매량과 비교할 수 없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세대 K9은 지난해 내수시장에서 월간 판매량 200대를 넘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풀체인지 직전인 올해 3월 판매량은 불과 47대였다. 대표적인 비인기차종인 현대차 신형 벨로스터가 신차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고무적인 결과다.

제네시스 G80과 EQ900 사이에 위치하는 신형 K9은 제네시스 브랜드에 뒤처지는 것은 ‘이름’ 뿐이었다. K9은 고급차로서 갖춰야할 덕목을 모두 갖춘 차다. 시승 내내 기아 엠블럼이 야속하게 느껴졌을 만큼 전체적인 상품성이 썩 마음에 들었다.

신형 K9은 얼핏 제네시스 브랜드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제네시스보다 앞선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K9의 판매량 급상승은 이 같은 장점이 실수요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말이 된다.

K9의 외부디자인. <사진=박경보기자>

K9은 대형 세단답게 체구부터 웅장하다. 차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주차장에선 주차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고 넓다. K9의 전장은 5m가 넘는 5120mm이며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축거 역시 3105mm에 달해 실제로 뒷자리에 탑승해보면 레그룸이 광활하게 남는다.

무엇보다 K9은 차체크기는 제네시스의 기함인 EQ900과 비슷하면서 가격대는 한단계 밑인 G80과 겹친다. 한마디로 적은 비용에도 큰 차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K9은 EQ900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고 축거도 55mm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반면 가격대는 3.8 기준 5490~7750만원으로 G80 3.8(6390만원~719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가격경쟁력과 차체크기로만 단번에 인기를 얻긴 쉽지 않다. K9의 최상위 트림인 5.0 퀀텀을 약 600km 가량 장거리 시승한 결과, K9은 이름 그대로 고급차의 ‘정수(精髓)’가 될 만 했다. 고급차로서 갖춰야할 각종 첨단 편의‧안전사양과 거주성, 고급감, 안락한 승차감 등을 살뜰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K9의 실내공간. <사진=박경보기자>

K9은 고속도로 주행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후측방 충돌 경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전방 충돌방지 보조 등 반자율주행을 위한 각종 ADAS 사양은 물론이고 제네시스 G80에 탑재된 기능보다 한단계 진보한 차로유지 보조 기능이 탑재됐다.

고속도로 구간에서 스마트 크루즈컨트롤을 활성화해보니 적극적으로 스티어링 휠이 움직이는 점이 눈에 띈다. 설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은 기본이고 앞차와의 간격에 맞춰 자연스럽게 가감속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차종은 반자율주행을 시속 60~70km 이상의 속도에서만 활성하거나 수 분내의 짧은 시간만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K9은 시속 60km 이하의 저속은 물론 마음만 먹으면 주행내내 반자율주행 기능을 쓸 수 있다. 졸음방지를 위해 가끔 스티어링 휠을 잡아달라는 경고가 뜨지만, 사실상 ‘자율주행’이라고 봐도 될 만큼 고도화된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했다.

특히 K9의 자율주행 기술은 내비게이션과 연동되는 점이 특징이다. 덕분에 곡선과 안전구간 진입시 자동감속이 가능하고 터널 진입 전 자동으로 창문을 닫고 내기순환 모드로 전환된다. 국산차로서는 가장 많은 안전‧편의사양을 적용했기 때문에 차량 운전시 스트레스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쇼퍼드리븐카로 개발됐지만 운전자의 만족감도 상당한 셈이다.

애초에 2열 승객을 위한 차인만큼 후석 특화사양들도 K9의 강점이다. 뒷자리에서 실내온도와 미디어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후석에 배치된 디스플레이로 전체 운행경로를 확인할 수도 있다. 또 2열시트의 각도가 조절되기 때문에 가장 편안한 시트포지션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속도가 높아지면 실내 인지소음을 고려해 통풍시트의 통풍량도 같이 높여주는 똑똑한 기능을 갖췄다.

<사진=박경보기자>

이 밖에도 K9에는 똑똑한 기능들이 곳곳에 탑재돼 있다. 헤드업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블루투스로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문자를 내비게이션 화면에 표시하고 음성으로 읽어주기도 한다. 다만 탑승자의 키와 몸무게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시트포지션을 맞춰주는 스마트 자세제어는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했다. 앉은키가 커서 시트를 최대한 높이는 편이지만 정작 시트를 높이고 등받이를 과하게 눕힌 점이 아쉬웠다.

K9은 자동차의 기본기인 주행성도 국산차 수준을 뛰어넘을 만한 강점을 갖췄다. 150km/h를 넘어서는 고속주행에도 체감속도가 100km/h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고속주행 능력을 보여줬다. 특히 K9의 듬직한 주행능력은 시간당 100mm에 육박하는 매서운 폭우가 쏟아졌을 때 빛을 발했다. 각 바퀴의 제동력과 동력을 가변 제어하는 전자식 상시 4륜구동 시스템(AWD)을 적용한 덕분에 접지력이 부족한 빗길에서 크게 회전하거나 급가속하더라도 미끄러지거나 뒤뚱거리지 않았다.

시승차인 K9 퀀텀은 AWD를 탑재하고 배기량이 무려 5000CC에 달하는 탓에 복합연비는 7.5km/ℓ에 그친다. 하지만 고속도로 위주로 600km를 주행한 결과 최종 평균연비는 9.3km/ℓ 수준을 기록했다.

◆ 총평

신형 K9은 기아차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고급차”라고 설명할 만큼 모든 부분에서 새로워졌다. 특히 기존 국산차 수준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완성도 높은 반자율주행기능과 첨단 편의사양, 높은 가격경쟁력은 K9만의 핵심무기다.

다만 유일한 약점은 ‘기아차’의 ‘K9'이라는 점이다. K9이 기아 엠블럼을 달고 나온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몇 단계는 끌어올릴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발목을 잡을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K9 스스로 기아차 이미지를 높인다면 수입차 브랜드와 제네시스가 장악한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승산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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