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9.07 06:00

군산공장·노사문제 등 외면하고 시장 치적쌓기용으로 전락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광주형 일자리' 도입을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자동차업계는 물론 제조업의 새로운 뇌관이 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새로운 방식의 일자리 창출 모델로 시가 약 1조원을 들여 건설하는 자동차 공장에 현대차를 비롯한 다양한 자동차회사들이 일정 지분을 투자하고 일부 차종을 위탁 생산하는 방식의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을 만들었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를 제조업 쇠퇴에 따른 고용위기 지역의 대안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완성차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복지혜택을 늘려 실질적인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게 광주시의 계획이다.

시는 노동자 임금을 현대차 조합원 대비 절반으로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고 다양한 지원책으로 실질적인 생활수준을 높이기로 했다. 광주시가 생각하는 ‘적정임금’은 현재 현대차 생산직의 평균 연봉인 8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약 40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정부와 광주시의 공언대로 광주형 일자리는 정말 일자리 창출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땔감을 안고 불을 끄러간다는 뜻의 포신구화(抱薪救火)라는 말이 있다. 광주형 일자리를 밀어붙이는 광주시와 정부를 보면서 생각나는 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야심차게 꺼내든 위탁생산 방안은 오히려 가뜩이나 침체된 국내 자동차 산업에 직격탄을 날릴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 사업의 명분이 갈수록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절반 임금으로 고용만 보장된 반쪽짜리 정규직은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부기조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만 골몰하다보니 스스로 내세웠던 원칙을 무시하는 꼴이 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지역민들의 혈세로 복지비용을 지원한다면 세수부담 증가는 물론 형평성에도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광주 위탁공장에 배정되는 차종은 현대차의 초소형SUV 레오니스 등 저가형 차종이 주를 이룰 것으로 알려진 만큼 공장의 수익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국내 자동차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곧장 지자체와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현대자동차의 소형SUV 코나가 울산공장 생산라인에서 조립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지엠 공장 폐쇄로 지역경제 파탄에 이른 군산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않은 채 이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자동차 공장 가운데 가장 최신식 공장인 군산공장을 뒤로 하고 엉뚱한 곳에 신규 자동차 공장을 만든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게다가 광주시는 이미 기아차 공장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광주에서 불과 1시간 반 거리의 군산은 한국지엠 공장의 폐쇄로 도시 전체가 시름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 아닌 현대차의 투자 등 광주시장의 치적쌓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 명분으로 내세운 노사민정 대타협 대신 투자자의 투자유치에만 치중하는 것도 문제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협상에 돌입한 이후부터는 반값임금 문제만 부각될 뿐 노동시간 등 다른 의제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노동계를 협상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6일 광주시의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어려움을 겪는 건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정책이기 때문"이라며 "문제의 본질은 반값 연봉과 투자규모가 아니라 시간이 다소 걸려도 노사민정 대타협이라는 원칙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여당의 말대로 '노사민정 대타협'을 바탕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과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부터 논의되지 않는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먼저다. 폐쇄된 군산공장 문제와 경직된 노사관계,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등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광주형 일자리도 비로소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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