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18.09.07 05:00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은산분리 규제의 탄력적인 운영을 주문하면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이 국회에 막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산업자본의 지분보유 한도와 대주주 자격 요건에 대해 여당 의원 간에도 의견이 다르고, 야당과의 합의도 이루지 못해서다.

정치권은 현재도 자신들의 주장으로 논쟁만 벌일 뿐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눈치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20~30년씩 일찍 인터넷은행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는 어떨까. 대체로 선진국의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수준은 우리보다 높지 않다. 

미국은 25% 이내, 일본은 일정조건 아래 100%까지, 유럽은 은산분리 규제 없이 지분 10, 20, 33, 50% 초과 시 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 허용하고 있다. 이에 현재 미국 20여개, 일본 8개, 유럽에서 30여개 등의 인터넷은행이 성업 중이다.

이 가운데 일본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한 모습은 우리가 참고해 볼만 하다. 

일본은 인터넷전문은행을 처음 도입할 당시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5%로 제한했다. 그러나 자본금이 부족해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이에 일본 금융당국은 지난 2002년 정부가 승인할 경우 20% 이상, 대주주가 은행건전성을 확보할 때 50% 이상의 지분 보유를 인정했다. 덕분에 일본 1위 인터넷은행인 라쿠텐은행은 100% 지분을 소유할 수 있었고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근거인 '메기효과'도 컸다.

인터넷은행 대주주에 대한 자격 요건 제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은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 통신사 KDDI, 편의점 프랜차이즈업체 세븐일레븐 등 산업자본이 은행과 공동출자 방식으로 인터넷은행을 설립했다. 미국의 경우엔 제2금융권과 증권·카드·유통·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자본이 참여했다. 유럽은 은산분리 규제 자체가 없지만 대부분 기존 은행이 영업채널 확대의 목적으로 인터넷은행을 자회사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대기업집단 중 ICT 주력 기업에 한해 대주주 자격을 허용하려는 여당의 생각과 달리 ICT기업, 기존은행권이 중심이 된 인터넷은행은 시장에서 퇴출됐다. 오히려 금융투자사, 카드사, 자동차 및 가전 등 제조사 등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미국 사례에서 볼 때 ICT기업만이 인터넷은행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일 조건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일본·미국 사례처럼 부작용 없이 굴러간다고 단정할 수 없다. 토양이 다른 만큼 우리 현실에 맞는 방안은 꼭 필요하다.

일본은 인터넷은행이 흑자로 전환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오랜기간 동안 일본 정치권에서도 고민을 거쳤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도 선진국 사례와 국내 현실을 모두 고려해 머리를 맞댈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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