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경보 기자
  • 입력 2018.09.29 06:03

40년간 삶의 최전선 함께해온 우리 자동차의 역사

기아자동차 봉고3. <사진=박경보기자>

[뉴스웍스=박경보 기자] 기아자동차의 상용차를 대표하는 ‘봉고’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상징적인 모델이다. 언제 들어도 푸근한 이름인 봉고는 지난 1980년 첫 선을 보인 이후 어느새 40년 가까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흩날리는 가을바람에 안긴 코스모스처럼 국내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봉고는 대한민국의 풍경과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스테이플러가 ‘호치키스’, 굴삭기가 ‘포크레인’으로 불리듯 봉고는 오래 전부터 국내 시장에서 승합차의 대명사로 인정받아왔다.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현대차의 그레이스도 쌍용차의 이스타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모두 ‘봉고차’였다. 환경과 안전규제 강화로 우리가 알던 봉고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1톤트럭 봉고는 고단한 삶의 최전선에서 여전히 함께 호흡하고 있다.

사뭇 쌀쌀해진 가을바람이 불던 추석연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장인어른이 새로 뽑은 봉고트럭이 궁금해졌다. 시멘트 유통 관련 생업에 종사하시는 장인어른은 최근 ‘투잡’을 위해 1.2톤짜리 봉고트럭을 새로 장만하셨다. 시멘트 포대를 운반하는 용도인 일명 ‘파레트’를 회수해 짐칸에 가득 싣는 것이 봉고의 임무다. 아직 1만7000km 밖에 달리지 않은 새차지만 험한 건설현장을 쉴새없이 돌아다닌 통에 여기저기 긁히고 찌그러지고 더럽혀졌다.

하지만 보통의 승용차처럼 깨끗하게 관리된 봉고는 매력이 없다. 치열한 삶의 현장을 함께 공유한 흔적이 남아있어야 비로소 반짝반짝 빛이 난다. 주름하나 없이 하얀 와이셔츠보다 땀에 절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버지의 티셔츠가 더 친근한 것처럼.

봉고3의 외관. <사진=박경보기자>

장인어른께 조심스럽게 폴딩키를 받아 지하주차장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봉고트럭을 흔들어 깨웠다. 장인어른의 손때가 가득 묻은 봉고의 실내는 아주 간결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버튼을 품고 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경차 모닝 스타일의 스티어링 휠이 조금 아쉽지만 사이드미러 자동접이, 시트열선, 스티어링 휠 열선, 차체제어 시스템(ESP), USB 커넥터 등 다양한 기능들이 적용됐다. 사이드미러에는 방향지시등까지 붙어있다. 인조가죽시트는 승용차에서도 선택사양으로 고를수 있는 브라운시트다. 수 년전까지만 해도 기대하기 힘들었던 옵션들이 대거 탑재된 셈이다. 물론 승용차에선 흔하디 흔한 기능들이지만 화물차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진화다.

장인어른의 봉고는 화물차에선 흔하지만 요즘 승용차에선 잘 볼 수 없는 6단 수동미션이다. 주문이 쏟아지는 오토미션은 출고까지 수개월을 기다려야해 상대적으로 빨리 받을 수 있는 수동미션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키를 돌리니 ‘부르릉’하고 온몸을 떨며 시동이 걸렸다. 오랜 만에 운전해보는 수동차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밟았던 클러치를 살며시 뗐다. 갤갤갤하는 봉고 특유의 디젤엔진음은 멀리서도 단숨에 구별할 수 있는 정겨운 소리다.

봉고3의 실내모습. <사진=박경보기자>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본격적인 탐색전에 나섰다. 클러치 조작에 민감한 차종들도 있지만 태생이 화물트럭이라 그런지 봉고는 클러치가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클러치를 생각보다 빠르게 놓더라도 시동이 쉽게 꺼지지 않아 편한운전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봉고의 수동변속기는 무려 6단이다. 클러치를 밟으며 순차적으로 단수를 높이다보면 80km/h 수준에서 이미 최고단에 도달하게 된다. 수동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변속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던 게 시승의 흠이지만 미션과 구동축이 철컥철컥 맞물리는 직결감이 사뭇 믿음직스럽다.

화물차는 화물차인지라 승차감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통상 동승자가 아닌 운전자가 멀미를 느끼기 어렵지만 봉고는 운전을 하고 있어도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적재함이 텅빈 탓에 통통튀는 승차감이 더 부각됐던 듯하다.

봉고가 유난스럽게 거친 승차감을 보이는 이유는 본연의 임무인 ‘적재’를 위해서다. 한국시장의 특성 상 국내 대부분의 봉고는 정해진 적재능력을 초과해 과적하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옛 삼성차가 ‘야무진’을 앞세워 야심차게 소형트럭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참패한 이유도 과적을 버텨내지 못한 부실한 하체에 있다.

삼성차의 흑역사가 된 야무진과는 달리 봉고는 남다르게 튼실한 하체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봉고는 비록 승차감은 많이 떨어지지만 아무리 많은 짐을 쌓아올려도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봉고의 진짜 진가는 믿음직스러운 적재능력에 있는 셈이다.

◆ 총평

생계형 차종인 봉고트럭은 지난 40여년 간 서민과 소상공인들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4차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겉으로 보기엔 투박한 소형트럭이지만 국민들에게 단순한 트럭이상의 의미가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봉고는 형제차 포터와 함께 국내 경제 최후방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대견한 차종이다.

물론 1톤트럭 시장을 현대·기아차가 독과점하고 있는 탓에 상품성 개선이 매우 느린 점이 최대 단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봉고가 지닌 의미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특히 새로운 경쟁자인 르노 마스터가 도전장을 던진 만큼 진검승부를 위한 의미있는 진화를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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