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5.12.30 19:21

CJ제일제당의 ‘비비고만두’는 지난해 미국 진출 5년 만에 1000억원대 브랜드로 올라섰다. 이는 CJ제일제당이 만든 식품 브랜드 가운데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989억원)을 넘어선 첫 사례다. 중국 대형마트에서 CJ제일제당이 베이징 최대 식품기업인 얼상그룹과 함께 만든 얼상CJ의 ‘백옥두부’는 중국 제품보다 3배 비싸게 팔린다. 빙그레 ‘메로나’는 한국의 겨울 비수기에 지구 반대편은 여름인 점을 활용해 브라질을 거점으로 중남미 시장에서 매출을 올린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중국에서 결혼식 답례품으로, 베트남에서는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음식으로 활용된다.

 

◆한국 장수식품, 해외 시장에서 K푸드 첨병 역할

가요와 드라마에서 출발한 한류 흐름이 화장품에 이어 식품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장수식품들이 해외 시장에서 음식한류(K푸드)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K푸드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식품·외식업계가 해외 시장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진출에 나서고 있는 것. 특히 30~4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받았던 장수식품들에 해외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철저히 그들 입맛에 맞게 현지화한 전략을 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 대형마트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진열돼 있다. 사진=오리온

‘초코파이’를 앞세워 일찌감치 중국을 비롯한 해외시장에 진출한 오리온은 ‘고래밥’, ‘예감’, 오!감자, 초코송이, 자일리톨껌 등 6개나 되는 브랜드의 해외 매출 규모가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각 브랜드 매출이 1100억원에서 최고 3000억원에 육발할 정도로 메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대표 브랜드 초코파이의 작년 해외(중국·러시아·베트남) 매출은 2700억원으로 국내 매출(1130억원)의 2배가 넘는다.

오리온 중국법인의 올 매출 목표는 1조3500억원으로 한국 본사 매출액 7100억원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오리온은 2020년까지 중국 매출을 2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해외 시장에서 오리온의 이같은 성공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 힘입은 것이다. 오리온은 중국 자체 연구소를 가동해 처음부터 중국인 입맛에 맞는 초코파이를 내놨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적의 밀가루 입자를 찾아내고 한국에서 주재료가 밀가루였던 제품을 중국에서 감자고 바꾸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해외에 나갈 때는 현지 고객의 입맛과 정서에 맞게 제품을 새롭게 론칭하는 등 현지화전략이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오뚜기는 마요네스와 라면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 실적 1000억원을 달성했다. 마요네스는 특히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다. 러시아인들은 마요네스를 거의 모든 음식에 넣어먹는 ‘만능 소스’로 활용할 정도다.

오뚜기의 라면은 마요네스의 뒤를 잇는 주요 수출품목으로 떠올랐다. 라면은 얼큰해야 한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과 달리 맵지 않은 치즈라면은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 동남아시아에서 색다른 먹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은 세계 최대 라면시장인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 선전하고 있다. 농심이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올린 매출은 전년 대비 28% 늘어난 1억8000만달러로 역대 최고 실적이다. 중국내 유통망을 확대하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타오바오를 중심으로 온라인 사업에 주력한 덕분이다.

농심 신라면은 중국에서 제일 비싼 라면보다 1.5배 비싸게 팔릴 정도다. 농심 관계자는 “연간 462억개의 라면이 팔리는 세계 최대의 라면시장 중국을 글로벌 전초기지로 삼아 해외에서 신라면 신화를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농심은 백두산 천지물로 만든 '백산수'로 중국 생수 시장도 공략한다. 옌볜주 안투현에 있는 신공장에서 생산되는 백산수의 70%를  중국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다. 중국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1000여개의 신라면 영업망을 활용해 초기 입점율을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중국 내 생수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팔도의 컵라면 ‘도시락’은 해외 매출이 국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도시락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1847억원으로 국내 매출(43억원)의 40배가 넘는다. 미국 등 30개국에 수출되는 도시락은 특히 러시아에서 ‘국민간식’, ‘국민라면’으로 통한다. 치킨·버섯·새우 맛 등을 만들어 현지화에 노력한 결과 러시아 용기면 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이용자들이 도시락을 많이 찾으면서 러시아 추위를 달래주는 먹거리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롯데제과는 최근 해외 시장에 진출한 지 11년만에 누적 매출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2004년 첫 해외 진출 이후 2008년 1조원, 2011년 2조원을 달성했으며 올 3분기까지 5조원을 넘어섰다. 롯데제과는 현재 카자흐스탄, 벨기에, 파키스탄, 인도, 중국, 베트남, 러시아, 싱가포르 등 8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으며 21개 해외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인도의 경우 롯데초코파이 시장점유율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총 매출 가운데 현재 30%를 차지하는 해외시장 비중을 오는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두자녀 허용 정책 시행...21조 중국 분유시장을 잡아라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하게 중국 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것이 분유업계다. 중국 정부가 두자녀 허용 정책을 시행키로 하면서 최근 우유 공급은 늘어나는데 소비는 줄어 국내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유업계로서는 호재 중에 호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영국 리서치기관인 ‘유로모니터’는 2자녀 허용정책 시행으로 2018년 중국 분유시장 규모가 1177억 5000만 위안(약 21조 4882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 분유시장에서는 지난 2008년 ‘멜라닌 분유’ 파동 이후 수입산 분유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고 한국 분유제품에 대한 선호호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관세청 집계 결과 올 8월까지 국산 분유의 중국 수출액은 7276만달러로, 전년보다 40% 늘어났다.

국내 분유업체 최초로 중국에 진출한 매일유업은 중국 최대 유통업체인 화련그룹 및 중국의 유아식 전문 업체인 비잉메이트(Beingmate)와 업무 협약을 맺고 사업을 확장 중이다. 올해 중국 분유 수출액이 4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3500만 달러 수출을 목표로 잡은 남양유업도 유통망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파스퇴르도 올해 400억원 수출액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내년 수출 목표액을 500억원으로 늘려잡았다. 한국산 분유는 역직구몰에서도 인기가 높아 특히 올 광군제(11월11일)기간 동안 역직구몰을 통한 중국 소비자들의 국내 분유 구매는 눈에 띄게 늘었다. 중국인들을 위한 유아동용품 전문 해외직구 플랫폼 ‘맘스베베닷컴’을 운영중인 한중 합자기업 테바글로벌 박영만 대표는 “한국 기업끼리 경쟁하기보다는 한국산 제품의 안전성과 합리적인 가격 등을 앞세워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제무역연구원의 김은영 수석연구원은 “두 자녀 정책 확대로 향후 중국 유아용품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라며 “주요 소비자인 젊은 부모와 워킹맘 증가로 인해 주 양육자 역할을 하는 조부모의 소비채널이 다르기 때문에 온라인-모바일-오프라인 채널을 동시에 공략하는 옴니 채널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슬림 식탁에 오르려면 ‘할랄 인증’이 필수

최근들어 국내 식품업체들이 새로운 수출 시장을 뚫기 위한 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할랄 인증이다. 특히 국내 식품업계가 경쟁이 치열한 중국이나 러시아 시장에 대한 대안으로 찾고 있는 동남아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전체 무슬림의 62% 정도가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돼 동남아국가들과 중동 국가들까지 진출하려면 할랄 인증이 필수 항목으로 떠오른데 따른 움직임이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의미로, 할랄 인증은 이슬람법을 기준으로 무슬림이 먹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 가공된 식품 및 공산품에 부여된다.

전 세계 약 17억 무슬림을 위한 할랄 시장 규모(세계할랄포럼 기준)는 지난 2013년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2019년에는 2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중동에 수출되는 매일유업 분유제품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인기를 얻은 밀키스와 알로에주스에 대한 할랄인증을 마쳤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11월 ‘밀키스’와 ‘알로에주스’가 국내 유일의 할랄인증기관인 한국이슬람교중앙회(KMF, Korea Muslim Federation)를 통해 할랄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은 세계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할랄인증기관인 말레이시아(자킴, JAKIM), 싱가포르(무이스, MUIS) 등과 상호 동등하게 인정된다. 이를 계기로 롯데칠성음료는 밀키스와 알로에주스를 앞세워 말레이시아에 할랄 제품의 수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매일유업은 지난달 18일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할릴인증 기관인 이슬람 성직자 협의회(울레마협의회·MUI)로부터 인증을 받았다. 내년에는 말레이시아 총리실 산하 할랄인증 기구인 자킴(JAKIM) 인증 획득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들 기구와 함께 세계 대표 할랄인증 기관으로 꼽히는 싱가포르 무이스 인증도 검토하고 있다.

빙그레는 김해공장에 대해 말레이시아 할랄 인증뿐 아니라 관련 검역·위생 승인을 모두 받았다. 빙그레는 이를 통해 지난 9월 대표 제품인 바나나맛 우유를 말레이시아에 첫 공급했으며 올해 총 12만 달러 규모를 수출할 예정이다.

이밖에 CJ제일제당은 햇반, 조미김, 김치로, 대상 청정원은 마요네즈, 당면으로, 농심은 신라면으로, 크라운제과는 죠리퐁, 콘칩 등으로 할랄 인증을 받았다.

 

 

◆식문화, 유행 덜 타고 지속성 길어 해외서도 경쟁력 충분

미국 포브스지가 조사한 세계 100대 식품 기업 명단을 보면 1위 네슬레를 비롯해 코카콜라, 맥도널드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지만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 세계 식품시장 점유율을 봐도 미국 17.5%, 중국 15%, 일본도 7.5%에 달하지만 한국은 1%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국내 식품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4%, 고용의 5%를 차지하는 전통적인 내수 산업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새 국내 식품산업도 한류 바람에 편승한 K푸드의 인기로 고급 먹거리로 포지셔닝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날개를 펴고 있다. 이같은 변신이 성공할 경우 국내 식품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계속 신제품이 쏟아져나오고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화장품이나 패션 등의 분야와 달리 식문화는 한번 입맛에 길들여지면 상대적으로 지속성이 길다는 게 특징”이라며 “각 나라 시장에 맞는 식품과 메뉴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품질을 유지한다면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가에서는 중국에서 대박을 낸 화장품 업체들의 바통을 음식료업계가 이어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경기 성장이 둔화됐다고는 하지만 구매력 있는 소비계층이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는 더 커져 K푸드의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요 음식료 상장사의 내년 해외매출 비중은 16%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중국시장에서 음식료 빅히트 기업이 탄생할 경우 제2의 아모레퍼시픽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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