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31 09:27

 

병신년, 원숭이 해가 열린다. 원숭이는 지혜로움, 재빠름의 대명사. 그러나 일정한 마음자리를 제대로 못잡아 일을 그르치는 속성도 지녔다.

다가올 2016년은 원숭이의 해다. 그것도 ‘붉은 원숭이’라고 하는데, 새해의 희망에 그를 견줘 꿈을 부풀리는 사람도 많다. 원숭이는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이다. 영어의 구분으로는 꼬리가 달려 있는 원숭이를 monkey, 그렇지 않은 종류를 ape로 구분한다는 설명이 있다.

한자세계에서 원숭이를 지칭하는 글자는 퍽 많다. 그러나 종류별로 그를 다 알아보는 일은 번거롭다. 우선 원숭이를 대표하는 글자는 猴(후)다. 지방의 권력자인 제후의 侯(후)라는 글자가 그 안에 섞여 있다. 원숭이의 습성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앙을 통제하는 황제의 권력에 붙어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지방 제후는 늘 눈치를 보며 행동하기 마련이다. 아울러 중앙과의 다툼을 피하거나 그로부터 우월해지기 위해서는 항상 상황과 시류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원숭이가 그런 제후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일반 동물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는 부수 犭(견)에 제후의 侯(후)를 붙였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 풀이가 맞을지 모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십이지(十二支)의 아홉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상서로운 존재로도 꼽힌다. 제후의 권력을 상징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십이지를 이루는 동물의 하나로서 원숭이의 인기 또한 다른 십이지의 동물에 못지않다.

‘원숭이’라는 낱말의 뿌리는 한자라고 한다. 원숭이를 각기 표시하는 두 한자, 즉 猿(원)과 猩(성)의 猿猩(원성)과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키는 ‘~이’의 합성으로 ‘원성이→원승이→원숭이’로 변했으리라는 풀이가 보인다. 그러나 조선 문헌에 ‘원숭이’에 관한 표현은 나중에 등장한다. 대개 17세기 이후의 조선 말엽에 등장했으리라고 추정한다.

그 전의 표현은 ‘납’이다. 申(신)이라는 글자를 두고 뜻을 ‘납’, 발음을 ‘신’으로 적는 이유다. 이 납은 다시 ‘나비’, 그에 어떤 연유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잔’이라는 말이 붙어 ‘잔나비’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우리의 예전 입말에서 원숭이를 때로 잔나비로 불렀던 연유다.

요즘 중국에서는 원숭이를 흔히 猿猴(원후)라고 적는다. 둘 다 원숭이임에는 틀림없으나, 앞의 猿(원)은 오랑우탄이나 침팬지, 고릴라를 가리키는 유인원(類人猿)이 대상이다. 뒤의 猴(후)가 그에 비해 진화의 정도가 떨어지는 일반적인 원숭이다.

원숭이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동양의 고전은 <서유기(西遊記)>다. 손오공(孫悟空)이 주인공의 하나다. 그는 현장법사(玄奘法師)와 함께 책의 두 축을 이룬다. 현장법사는 수준 높은 고승(高僧), 손오공은 무예가 출중한 보디가드다. 둘은 각기 다른 경계를 지녔다. 현장이 서역으로 진리의 말씀을 구하려는 이상(理想), 손오공은 삶 속의 갖은 풍파를 이겨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현실(現實)의 대변자라는 구도다.

마침 그 소설 속의 손오공이 붉은 빛의 털을 지닌 金猴(금후)다. 그래서 세밑에 들어선 요즘 중국에서는 손오공의 캐릭터 상품이 퍽 인기라고 한다. 늘 닥치는 삶 속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설 속 손오공이 의미하는 강력한 현실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원숭이의 속성에서 우리가 살피며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부동성(浮動性)이다. 물에 떠다니는 듯한 불안함이다. 그래서 心猿意馬(심원의마)라는 성어도 나온다. 한 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원숭이의 마음, 벌판을 마구 내달려 혼란을 자초하는 말과 같은 심성이다.

원숭이가 지닌 영리함, 재빠름에 못지않게 우리는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 단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병신년 원숭이의 해를 맞아 우리가 앞으로 닥칠 여러 풍파를 헤치며 순항하기 위해서는 두 점을 반드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롭고 신속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넓은 시야로 침착함을 지켜내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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