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재필기자
  • 입력 2016.01.06 08:59
 

요즘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는 '기술금융'이다. 기술금융은 기업의 재무상태가 아닌 보유한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포함된다. 특허권·저작권·상품권처럼 무형의 지식재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거나 특허를 담보로 대출을 해주면서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기술 등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IP(Intellectual Property)금융, 벤처금융이라고도 불린다.

◆정부, 기술금융은 절반의 성공 '자평'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기술금융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돈줄'이 막힌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스타트업 기업 등을 지원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엔젤투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기술금융 도입 이후 금융계와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5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술금융이 도입된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취급액은 58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취급액은 지난해 6월부터 매달 약 3조~4조원씩 꾸준히 늘고 있다. 기술금융이 중소기업 여신 관행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출 규모 증가뿐만 아니라 만족도 측면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금융위가 지난해 10월30일~11월20일까지 중소기업과 은행 지점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술금융 정착 및 확대' 추진성과 점검 결과를 보면,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400명은 기술금융 전반에 대한 만족도로 5점 만점에 3.92점을 줬다. 2014년 12월의 3.74점보다 높은 수치다.

CEO들은 상환조건·기술력 반영·금리·금액 등 다양한 부분에서 만족감을 나타냈다. 신용이나 담보가 부족해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기술금융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은행 지점장 3305명은 5점 만점에 3.5점을, 전문가 집단은 2.8점을 각각 부여했다. 지점장들은 기술금융을 도입한 덕분에 대출금리가 인하되고 은행의 건전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좀 더 지켜봐야 겠지만, 기술금융의 당위성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용 기술평가 개발…기술금융 '날개'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21일 정부가 발표한 '투자용 기술평가 모형(기술금융 투자모형)'은 기술금융 활성화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금융 투자 활성화의 걸림돌이었던 투자기관과 기술기업 간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기존 은행권 기술신용평가 모형은 기업의 안정성과 부실위험 예측을 중심으로 구성돼 '기술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금융 투자모형은 기업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성장가능성을 예측해 투자대상 발굴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이 모형을 활용할 대상인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탈 등이 기업의 기술력에 따른 성장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 신용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모형은 은행권 기술신용평가 모형에 비해 기업의 성장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술성·시장성에 대한 배점을 강화했다.

개발과정에서 벤처캐피탈 등 투자기관이 실제 투자결정에 활용하는 핵심 평가요소를 조사해 ▲기술보호성 ▲성장성 ▲수익성 ▲기업가정신 ▲신뢰성 등 투자 관점의 평가지표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평가의 정확성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을 성장단계별로 분류했다. 창업 후 5년 이내이며 출시제품이 없는 사업화 이전 기업, 창업 후 5년 이내이며 출시제품이 있는 사업화 이후 기업, 창업 5년이 지난 일반기업 등이다.

금융위와 산업부는 은행권 기술금융 실적 평가 중 '기술기반 투자' 평가시 투자용 기술평가 모형을 활용한 투자를 실적으로 집계하고, 성장사다리 펀드 내 약 5000억원 규모 기술평가 기반 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에 투자용 기술평가 우수기업을 포함하는 등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칠 방침이다.

◆갈 길 먼 기술금융…은행권 담보·보증요구 75%

장미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갈 길이 멀다고 보는 업계의 시각도 많다. 이들은 기술금융의 취지는 담보나 보증 없이 기술력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담보나 보증을 내세워야 기술금융 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기술금융 도입 이후 17개월간 기술금융 자금을 받은 기업의 75%가량이 담보나 보증을 내세워야 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4년 7월 기술금융 도입 이후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잔액 58조4000억원(2015년 11월 기준) 가운데 기술금융을 통해 기업에 새롭게 공급된 신규 및 증액대출 자금은 3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기술금융 중 순수 신용대출 비중은 24.9%로 나타났다. 기술금융 대출의 4분의 1만 무담보·무보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담보·보증을 통해 자금을 빌렸다.

일반 중소기업 대출의 무담보·무보증 비중은 11.5%로 집계됐다. 기술금융의 순수 신용대출 비중이 일반 대출 보다 13.4%포인트 밖에 높지 않았다. 담보나 보증이 없으면 여전히 기술금융을 받기 힘든 구조로 볼 수 있다.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기술금융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2014년 모든 은행권의 순수 신용대출이 37%였다"면서 "은행들이 기술금융을 포함해 중소기업 전반에 걸쳐 심사능력을 높여 신용대출 평균 수준으로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전망은 밝지만, 정착에는 시간 걸려"

금융권 전문가들은 기술금융의 전망은 밝지만, 정착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입을 모은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술금융은 정책적으로 기술신용평가사인 TCB(Tech Credit Bureau)를 매개로 은행 중심의 중소 지원금융으로 추진 중이나 TCB의 역량 미흡으로 초기 시장의 신뢰가 크게 저하된 상태"라며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 경쟁이 지속됨에 따라 은행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정부는 정책 실효성을 높여 민간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되 시장내 부작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며 "시중은행들도 내부 혹은 외부 조직화를 통해 정책 대응과 수익성 관리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이란 연성정보에 근거한 대출이 은행권에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술굼융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기술력 평가로 신용리크스가 증가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확인하려면 3년 정도의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현재 대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기술금융을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금융권 전문가는 "기술금융에 대한 향후 전망은 긍정적인 시각이 많으나 정착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앞으로 정기적인 실태점검 및 현장조사를 통해 기술금융 정착 수준을 점검하고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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