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1.13 10:56
제주도에 설립될 최초 외국계 투자개방병원인 녹지국제병원<사진제공=녹지그룹>

‘의료 민영화’를 두고 논란이 많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논란에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일부는 괴담 수준의 논리를 들이대며 민영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 난무하면서 국내 의료산업의 대외 경쟁력 제고, 품질 높은 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질적 측면은 아예 외면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병원은 크게 세 종류다. 서울대학교 병원이나 삼성병원과 같이 학교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병원이 있고, 지방자치단체나 특수법인이나 공공단체 등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사가 개인 혹은 단체로 운영하는 영리 병원이 있다. 

수많은 언론들이 언급해 이미 익숙하기도 한 ‘의료민영화’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는 말이다. 이미 수많은 국내 병원들은 민영이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 2000여 곳 중 약 60% 가량이 개인 병원이다. 다만 기업이나 의사면허가 없는 일반 개인이 병원을 운영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럼에도 의료민영화는 우리 사회의 단골 쟁점이다. 우선 서비스 산업발전 기본법이 의료민영화 논란에 막혀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단 한 걸음의 진척도 없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중국 녹지그룹의 제주도 내 병원 설립을 허가한 것을 두고도 온라인에서는 의료민영화가 전면 허용됐다며 온갖 괴담이 번지고 있다. 주로 의료서비스 가격이 치솟아 서민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몰릴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전문가들은 의료민영화 괴담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국내 의료산업의 발전이 괴담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점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투자개방형 영리병원에 대한 금지가 풀리지 않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의료 기술과 성장 잠재력의 활용을 막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 한국 의료, 기술력은 최고지만 산업경쟁력은 ‘글쎄’

한국의 의료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7대 암 생존율은 의료 최강국 미국보다도 앞서고 있으며 간 이식 성공률은 선진국 평균 85%보다 조금 더 높고 뇌졸중 치료는 OECD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의료 서비스의 가격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심장질환, 관절수술, 위 이식 등 주요 질환의 의료서비스 가격이 미국의 3분의 1, 일본의 3분의 2가량이다. 여기에 한국의 뛰어난 ICT 기술력과 교통 인프라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의료 경쟁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산업은 그 실상이 다소 다른 모습이다.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산업 비중은 5.1%로 미국 12.3%, 독일 7.8%, 일본 7.3%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관련 일자리도 적다. 2014년 한국병영경원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중 보건의료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5%다. 주요 선진국인 미국 7.7%, 독일 7.5%, 일본 8.9%(복지 분야 포함)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 의료산업, ‘고용 없는 성장’ 속 새로운 돌파구

이처럼 뛰어난 경쟁력과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적으로 움츠러든 의료 산업을 우리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로부터 나오고 있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성장은 자칫 ‘고용 없는 성장’을 고착화시킬 수 있어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이 기대되는 의료산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하는 ‘고용보험통계’를 살펴보면 의료·보건서비스 분야와 의약품 등 보건산업관련 상품 및 서비스 분야의 취업유발계수는 각각 14.7명과 7.8명으로 자동차 8.8명, 반도체 3.2명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향후 국내시장에서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데에는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게다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의료 산업은 ‘핫마켓(hot market)’이다.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의료관광을 위해 국경을 넘은 사람의 숫자는 10억 명이며, 그들이 쓴 돈은 12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13조원에 해당되는 돈이다. 세계의료관광 시장은 2019년께 325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욕심내지 않을 수 없는 분야인 셈이다. 

◆ 투자개방형 병원 허용해 의료산업 시장 키워야

이처럼 의료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상황에서는 ‘투자개방형 병원’의 전면 허용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현재 투자개방형 병원은 제주도 및 8개 경제자유구역지대에 한하여 외국계 자본을 유치하는 경우에만 허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내 일반 기업으로부터도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싱가폴의 대표적인 투자개방형 병원 GLENEAGLES HOSPITAL <사진제공=GLENEAGLES HOSPITAL>

그 이유로는 무엇보다도 투자개방형 병원이 이미 보편적으로 널리 도입돼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공공의료의 선진국으로 꼽는 프랑스나 스웨덴에서도 투자개방형 병원은 광범위하게 운영 중에 있다. 심지어 무상의료를 도입한 스웨덴마저도 스톡홀롬에 총 4개의 종합병원급 투자개방형 병원을 세워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태국과 싱가포르는 투자개방형 병원을 통해 아시아 의료관광시장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방콕과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환자는 각각 120만 명과 250만 명에 달한다. 게다가 양국 모두 민간병원이 증시에 병원을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경쟁력 확대를 위한 인수합병(M&A)도 자유롭다. 

◆ ‘의료민영화 괴담’ 대부분 근거 없어...오히려 서민을 위해서도 좋은 정책

의료가격이 치솟는다는 ‘괴담’과 투자개방형 병원의 관련성은 아주 미미하다. 이미 의료서비스의 90% 이상을 민간이 공급하고 있는 실정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의 설립이 곧 공급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자금난에 시달리는 일반 병원이 단기적인 시각에 갇혀 수익 내기에만 급급해 국민의 보건 권리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험 민영화’ 논란도 근거가 미미하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들어서더라도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참여정부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는 공식 진단이다. 또한 투자개방형 병원이 들어서더라도 공공 의료기관은 물론 일반 기존의 병원도 그대로 운영될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보건 서비스에 대한 혜택은 그대로 누릴 수 있다.  

오히려 투자개방병원이 ‘서민’을 위해서도 좋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기효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장은 한국선진화포럼에 기고한 글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의료시장에 의료인 이외의 다양한 경제 주체를 참여시켜 시장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의료소비자인 대다수 국민의 편익을 증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