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4 14:53
푸른 숲과 맑은 물, 예로써 떠올릴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청량(淸凉)이다. 서울의 청량리도 원래 그런 곳이었을까. 만해 한용운 선생의 숨결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일찌감치 생긴 이름이다. 본래는 신라 말엽에 창건한 청량사(淸凉寺)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한때는 중앙선 발착역이 있어 강원도 일대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늘 붐비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청춘남녀들이 경춘선을 타고 1박2일 등의 이른바 MT를 떠나면서 많은 일화를 남겼던 곳이기도 하다. 1970~8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대개 이 청량리역 광장 앞의 시계탑을 약속 장소로 해서 만나 여행을 떠났다.

이곳은 또 지하철 1호선의 시발역이기도 하다. 1974년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은 청량리를 떠나 서울역에 도착하는 구간으로 먼저 개통했다. 지금은 9호선까지 생겨나고, 그 지선이 복잡하게 이어질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교통 수요가 많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70년대 청량리와 서울역을 잇는 이 지하철은 그야말로 ‘인기만점’이 아닐 수 없었다.

동네 이름이 워낙 좋다. 청량(淸凉)함을 싫어할 사람 누가 있으랴. 물이 아주 깨끗한 상태를 가리키는 한자가 淸(청)이다. 그저 깨끗함이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맑다’라고 칭한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 맑은 물이 있다고 상상해 보시라. 괜히 우리의 기분은 좋아진다.

그 다음 글자인 凉(량)은 ‘서늘함’을 가리킨다. 춥지는 않으면서 적당하게 시원하며 서늘한 경우다. 물론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서 이 글자를 떠올리는 일은 별로 유쾌하지 않을 듯. 그러나 더운 여름날이라고 가정하자. 마치 뜨거운 사막 속에서 떠올리는 차가운 물에 다름 아니다.

날씨와 기온 등의 주변 여러 조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이 淸凉(청량)은 좋은 뜻이다. 그 반대의 한자가 앞의 경우는 ‘흐리다’의 새김을 지닌 한자 濁(탁), 뒤의 경우는 ‘불꽃’ ‘덥다’의 의미를 지닌 炎(염)이다. 물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바로 濁(탁)이니 좋을 까닭이 없다. 아울러 몸에 병균이 옮겨와 안의 요소와 다투면서 생겨나는 게 바로 염증(炎症)이다. 이는 곧장 몸에 열이 나는 발열(發熱)로 이어지니 좋지 않다.

청탁(淸濁)은 물의 맑음과 흐림을 나타내는 단어다. 물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맑은 게 우선이고, 흐린 게 뒤다. 그러나 술에 있어서는 그런 좋고 나쁨은 생략이다. 맑은 술이 청주(淸酒), 흐린 술이 탁주(濁酒)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엇갈린다. 청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막걸리 등 탁주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염량(炎凉)이라는 단어도 있다. 따뜻함과 서늘함을 반복하는 경우다. 사람의 처지가 좋을 때는 따듯하게 맞이하다가, 별 볼일 없어지면 싸늘하게 대하는 그런 모습이다. 상대방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의리와 정분이 달라지는 태도에 해당하니 아주 가벼운 처신이다. 이런 사람이 많아져 일정하게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염량세태(炎凉世態)’다. 잘 나가는 사람 앞에서는 굽실거리고, 어려운 사람 깔보는 그런 사회의 풍조다.

그래도 사람들은 역시 맑음을 숭상한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은 맑은 바람(淸風)에 밝게 뜬 달(明月)을 가리킨다. 시 한 수 읊조리고 싶은 낭만적인 분위기? 아니다. 사전적인 뜻은 ‘결백하고 온건한 사람’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논함’으로 나와 있다. 어쨌든 그 맑음은 사람의 인격을 일컫는 쪽으로 이어진다. 공직자로서 으뜸으로 지녀야 할 덕목이 바로 청렴(淸廉)인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단어다. 우리는 그런 공무원을 청관(淸官)이라고 적어 칭송한다.

두 소매에 모두 청풍(淸風)만이 가득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중국에서는 이를 ‘兩袖淸風(양수청풍)’이라고 적는다. 왜 소매일까. 옛 선비들은 붓과 작은 벼루를 비롯해, 어디를 다닐 때 넣고 다녀야 할 물건들을 대개 폭이 넓은 소매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 커다란 소매 안에 아무것도 없이 맑은 바람만이 가득하다는 게 이 말의 뜻이다.

그 어원은 차치하고, 이 말과 우선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명(明)나라의 대표적인 청렴 관리 우겸(于謙)이라는 인물이다. 조정의 많은 관리가 부패에 찌들어 있던 무렵의 인물인데, 그는 당시 분위기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시에 등장하는 말이 바로 이 兩袖淸風(양수청풍)이다. 이 정도에 이르는 공무원이라면 요즘의 대한민국에서도 귀감으로 삼을 만하겠지.

‘청초하다’는 말도 있다. 그 청초는 한자로 淸楚다. 이 단어는 맑아서 선명한 모습을 가리킨다. 사람의 판단력도 이렇게 맑아서 선명한 경우가 좋다. 어디에 몰두한 사람보다는 그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판단력이 좋은 때가 많다. 한자 성어로는 그를 ‘傍觀者淸(방관자청)’이라고 적는데, 옆의 관찰자인 방관자(傍觀者)의 판단력이 정확하다(淸)는 의미다.

어쨌든 맑아서 서늘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淸凉이다. 단순히 우리가 무더운 여름에 마구 마시는 청량음료만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청량리는 따라서 청량음료의 淸凉(청량)이 아니라, 사람이 곧은 뜻과 함께 서늘함까지 유지하며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의미의 淸凉(청량)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차원이 높은 불가(佛家)에서의 가르침은 더 깊은 뜻을 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곳 청량사에 거주했던 위인(偉人)이 있다고 한다.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엄혹한 탄압에도 민족의 기개와 함께 자유인으로서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가 이곳에 머물면서 품었을 淸凉(청량)한 뜻을 되새기는 게 좋을 듯하다. 맑고 서늘해야 세속이 드러내는 작은 욕망에 묻히지 않을 테니, 큰 기개는 그런 자세에서 흘러나오는 법이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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