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4 18:15
전쟁과 정쟁은 많은 이탈자를 부른다. '망명'은 제가 살던 곳의 흔적을 모두 없앤 뒤 다른 곳으로 가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낱말이다. 사진은 6.25전쟁 중의 포로 모습. <미국 NARA>

세습 왕조 식의 공산독재-. 이제 그런 형용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나라는 북한뿐이다. 그 가혹한 왕조 식 전제에 시달리다 결국 그곳을 도망쳐 자유의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바로 탈북자(脫北者)다.

‘탈북’이라는 단어는 근래에 만들어진 새 조어(造語)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北)을 빠져나오다(脫)’라는 뜻. 중국 정부는 2002년 경 제법 많은 탈북자들이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 공관의 담을 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들에 대한 처리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초기의 중국 외교부는 ‘탈북자’라는 한국식 명칭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불법으로 (중국의) 국경을 넘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不法越境者(불법월경자)’ 등으로 호칭했다. 탈북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그 중국식 명칭은 원래의 뜻에 가까운 ‘북한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라는 의미의 ‘逃北者(도북자)’로 바뀌었다. 이제는 ‘탈북자’라는 한국식 명칭도 혼용하고 있다.

탈북의 행위는 결국 ‘망명(亡命)’이다. 이 망명이라는 단어는 일차적 한자 의미만으로 볼 때는 이해가 쉽지 않다. ‘죽다’ ‘사라지다’ ‘없다’라는 뜻의 亡(망)이라는 글자에, 목숨을 의미하는 命(명)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목숨이 사라지다? 그냥 죽는 것? 죽은 목숨?…. 뭐, 이런 식의 의문이 이어질 수 있다.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이 ‘망명’이라는 단어의 뜻풀이는 대개 이러하다. 우선 앞의 亡(망)은 ‘빼내다’ ‘없애다’의 의미, 뒤의 命(명)은 ‘이름’ 또는 ‘호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단어의 뜻은 ‘(원래 살던 곳에서) 이름을 지우고 빠져나감’이다. 이 때문에 망명은 도망(逃亡)과 동의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망명은 또 ‘죽음을 무릅쓴다’는 의미도 있다. ‘없다’라는 앞 글자의 새김, ‘목숨’이라는 뒤 글자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다. 이 뜻은 다시 발전해 ‘목숨 걸고 덤빈다’의 의미도 획득했다. 그러나 한국식 한자 사용은 ‘정치적인 동기 등에 따라 살던 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에 정착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으로부터 도망쳐 망명을 꿈꿨던 이른바 ‘꽃제비’ 출신의 나이 어린 소년들이 라오스에서 북한 요원들에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있다. 잔인한 북한의 정권에 의해 이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밝은 곳으로 잠시 머리를 내밀었던 꽃, 나이 어린 사람들이 그 어두운 북한으로 붙잡혀 돌아갔다는 소식에 여러 남녘 사람들의 근심이 깊어 슬퍼진다. ‘울적(鬱寂)’이 바로 이런 심사(心思)이리니….

 

<한자풀이>

脫(벗을 탈): 벗다, 없애다, 벗겨지다, 떨어지다 등이 주요 새김. 모자를 벗으면 탈모(脫帽), 머리가 벗겨지면 탈모(脫毛), 색깔이 빠지면 탈색(脫色), 합격권에서 벗어나면 탈락(脫落)이다. 이어 벗어나다, 떠나다, 빠뜨리다의 의미가 붙는다. 어디로부턴가 떠나면 탈리(脫離), 석가모니 부처처럼 진리를 깨달아 번뇌를 벗어버리면 해탈(解脫)이다. 일부 한국 대기업들처럼 세금을 빼돌리는 행위가 탈루(脫漏), 문장 쓰다가 글자 빼먹으면 탈자(脫字)다.

 

北(북녘 북)

 

越(넘을 월): 일반적으로 어딘가를 넘어서는 행위다. 건너서 넘어선다는 새김의 ‘渡(도)’의 의미와 유사하다. 그어놓은 선을 넘어선다는 의미도 있다. 담을 넘는 게 월장(越牆), 수준 등이 높아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초월(超越),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 일이 월동(越冬), 제 권한을 ‘오버’하면 월권(越權)이다.

 

亡(망할 망): 없어지다, 사라지다, 죽다 등의 새김. 그에 앞서 원래 의미하는 바는 ‘도망’이다. 내빼는 일 말이다. 생물의 목숨이 없어지는 게 사망(死亡), 어디론가 내빼면 도망(逃亡), 무엇인가를 잃으면 망실(亡失), 흔적조차 사라지면 멸망(滅亡)이다.

 

命(목숨 명):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틀, 즉 목숨이다. 생명(生命)은 그래서 나왔고, 목숨을 구하면 구명(救命), 삶의 맥박이 명맥(命脈)이다. 이에 덧붙여 하늘이 미리 정한 어떤 무언가를 말할 때도 있다. 운명(運命)이 그것이고, 하늘이 정해준 인생의 경로가 천명(天命)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지시를 말할 때도 있다. 명령(命令)이 대표이고, 사명(使命)도 그를 따른다.

 

鬱(쌓일 울): 원래는 수풀이 깊게 우거진 모양을 일컬었다. 그래서 무언가 겹겹이 쌓이고 또 쌓인 상황을 지칭한다. 근심이 쌓이면 우울(憂鬱), 이 상황이 깊어져 병으로 발전하면 울증(鬱症), 조급함과 우울함이 오락가락하면 조울증(燥鬱症)이다. 섬임에도 산과 구릉이 겹겹이 보인다고 우리는 울릉도를 한자로 鬱陵島라고 적었을까, 아니면 수풀이 빽빽이 우거진 산이라는 뜻에서 그리 했을까. 그 우울함이 슬픈 심사로 이어져 우리는 이를 울적(鬱寂)으로 적고는 하는데, 그보다는 우울함이 높이 쌓인다는 새김의 울적(鬱積)이 더 정확한 표기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중국어>

脫北者 tuōběizhě: 일반적으로는 脫 대신 逃táo를 더 많이 쓴다. 그러나 脫北者로 표기하는 경우가 점차 느는 추세다.

越境 yuèjìng: 국경 등의 경계선을 넘는 행위. 훌쩍 건너뛴다는 뜻의 跨越kuàyuè라는 단어도 많이 쓰인다.

亡命 wángmìng: 우리의 ‘망명’과 같이 쓰인다. 이 단어와 비슷하게 쓰이는 게 ‘보호를 요청하다’라는 뜻의 尋求庇護(寻求庇护 xúnqiúbìhù)다. 앞의 尋求는 ‘찾다’ ‘요구하다’, 뒤의 庇護는 ‘보호’ ‘피난’ 등의 새김이다.

流亡 líuwáng 이리 저리 떠도는 流落, 그리고 逃亡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직접적으로 ‘망명’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영토를 빼앗겨 해외에 떠도는 망명정부를 일컬을 때 흔히 流亡政府 líuwángzhèngf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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