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4 18:26
서울 삼각지 6.25전쟁 기념관에 있는 국군 용사들의 부조상. 나라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기념하며 그 교훈을 되새기는 일이 현충(顯忠)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던 사람들을 기념하는 달이다. ‘현충(顯忠)’이라는 단어의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앞 글자 ‘현(顯)’은 무언가를 바깥으로 꺼내 남에게 내보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밝다’ ‘뚜렷하다’라는 형용의 새김도 얻는다. 아울러 출세한 사람, 또는 그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바깥으로 보여줄 만한 게 많을 테니, 자연스런 의미의 덧붙임이다. 거기다가 마지막으로 붙는 새김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존경’이다.

우선 ‘드러내다’ ‘밝다’라는 새김으로 만드는 단어가 현저(顯著), 명현(明顯), 현시(顯示) 등이다. 둘, 또는 그 이상의 비교 대상이 서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게 현저(顯著), ‘뚜렷하다’라는 의미가 명현(明顯), 목표나 명령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일이 현시(顯示)다.

잘 나가는 고위 관료가 현관(顯官), 출세한 사람의 상태가 현달(顯達)이다.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가 현고(顯考), 현비(顯妣)다. 각각 저승으로 떠나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른다. 제사를 지낼 때 자주 사용한다.

충(忠)은 어떨까. 이 새김의 의미는 잘 알려져 있다. 옛 왕조 시절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忠誠)의 의미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덕목으로 따질 때 이는 ‘거짓 없음’, ‘최선을 다 함’ 등이다.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없애고 남을 위해 정성을 다 바치는 행위나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그 의미의 갈래는 꽤 다양하지만 큰 맥락을 따지면 그렇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충(顯忠)’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명백해진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忠)들을 존경의 마음으로 기려서 드러내는(顯) 행위다. 지난 6월6일 동작동 국립 현충원(顯忠院)에 들렀거나, 최소한 마음만이라도 그쪽으로 기울여 존경을 표하셨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만든 수많은 충령(忠靈)들은 그렇게 현충원 마당에 말없이 누워 있는데, 요즘의 불충(不忠)은 너무 자주 눈에 띈다. 국가와 사회에 기여키는커녕, 그 구석구석을 좀먹는 벌레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 ‘불충’이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먼 바다 저쪽에 유령 회사를 세워두고 돈을 빼돌리는 사람, 원자력발전이라는 분야에 몰래 숨어 거금의 돈을 뜯어 삼키는 사람, 돈에 기갈이 들린 사람처럼 자금 빼돌리기에 급급한 대기업….

그런 현상을 보노라면, ‘충’이라는 게 결코 옛 사람들의 옛 덕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충의 달, 현충에 정성을 기울이자. 그리고 내가 남에게, 그리고 사회와 국가에 진심으로 다가서고 있는지 아닌지도 한 번 따져 보자.

 

<한자 풀이>

顯(드러낼 현): 밖으로 드러내 잘 보이도록 하는 행위다. 현시(顯示)함은 우리가 꽤 자주 쓰는 단어. 차이 등이 겉으로 명확하게 드러나면 현저(顯著), 그런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내면 명현(明顯) 등으로 쓸 수 있다. 출세한 사람, 또는 그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현달(顯達)이 대표적이고, 현관(顯官)도 쓴다. 돌아가신 분을 기념하기 위해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점 기억하자.

 

考妣(돌아가신 부모 고비) 원래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지칭하는 의미도 얻었다. 考는 물론 ‘생각하다’ ‘시험하다’ 등의 뜻으로 훨씬 많이 쓰인다.

 

達(통달할 달): 길이 이리저리 잘 틔어 있는 상태. 사통팔달(四通八達)의 도로 사정이면 이 글자를 쓴다. 그래서 사물의 이치 등을 두루 잘 꿰고 있는 사람에게 ‘통달(通達)’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그런 한 편으로 ‘잘 나가는’ ‘출세한’의 새김도 있다. 그래서 ‘달관(達官)’이라고 적으면 ‘관가에서 꽤 잘 나가는 관료’이라는 뜻이다.

 

<중국어& 중국 성어>

明顯 (明显)míngxiǎn 아주 뚜렷한 상태. 분명함.

顯著 (显著)xiǎnzhù 위와 비슷한 새김. 우리말에 있는 “아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의 용례와 다를 게 없다.

顯示 (显示)xiǎnshì 뚜렷하게 보여주는 행위다. 우리말의 ‘현시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显示出他的才能”이라고 적으면 “재능을 드러내다”의 의미다.

顯而易見 (显而易见) xiǎn ér yì jiàn: 매우 자주 사용하는 성어다. ‘이치 등이 매우 명확해 분명히 드러난다’의 뜻.

大顯身手 (大显身手) dà xiǎn shēn shǒu: ‘身手’는 재능, 기술 등이다. 따라서 ‘크게 (자신이 지닌) 재능을 펼쳐 보인다’는 뜻의 성어. 역시 아주 많이 쓰인다.

八仙過海 各顯神通 (八仙过海,各显神通) bā xiān guò hǎi,gè xiǎn shén tōng: 전설 상의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면서 자신이 지닌 재주 하나씩을 선보인다는 뜻. 각자 지닌 재주가 나타날 때 이 성어를 자주 쓴다. 나는 ‘바다’를 건널 어떤 재주를 갖췄을까. 각자 생각할 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