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1.15 10:43

지난 8년간 경제는 1.4배 증가했지만 대기업집단 기준은 자산 5조원 이상으로 '현상유지'

기업 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을 둘러싼 여야의 첨예한 대립은 대기업을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에서 시작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위해서는 대기업들도 예외 없이 원샷법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는 재벌의 편법 승계와 일시적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대기업이 일부 업종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아예 법으로 명시화해야 한다는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도 현재 국회에 계류하고 있는 상태다. 순대·떡볶이·두부 등은 대기업이 못 팔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다.

이처럼 대기업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식을 줄 모른다. 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와 견제를 강화하자는 쪽과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의 대립이다. 그만큼 사회적인 위상과 차지하는 비중, 우리 국민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대기업의 영향력만큼이나 커진 것이 우리 경제의 전체 규모다. 1987년 대기업집단을 규정했던 기준이 자산총액 4000억원 이상의 기업집단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 경제의 변화상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실제 우리 법은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시대 흐름에 맞게 상향 조정해왔다. 하지만 최근 7년간은 그 기준이 변화하지 않아 시대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국내총생산은 1.4배 증가, 대규모 기업집단 기준은 그대로

한국에서 흔히 대기업이라고 하면 두 가지 분류를 통해 규정할 수 있다. 먼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다. 계열사를 모두 포함해 자산이 총 5조원 이상인 경우로, 보통 우리가 ‘그룹사’로 지칭하는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한편 금융·보험업의 경우에는 중소기업법이 규정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에 대기업으로 간주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대기업 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그룹사는 2015년 12월 현재 기준으로 총 61곳으로 계열사는 총 1658개사로 이르고 있다. 한편 자산 5조원 이상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한 2008년 당시에는 대기업집단이 41곳이었고 계열사는 946개사였다. 지난 8년간 20개 그룹사가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도표 계열사 숫자는 2015년 4월 기준으로 표기돼 있음<자료=전경련>

그런 가운데 이 같이 대규모 기업집단의 숫자가 늘어난 이유는 단지 ‘기준이 바뀌지 않아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기업 규모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지정 기준이 지난 8년간의 경제 규모 성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는 1조120억 달러 규모였던 반면 2015년 현재 기준으로는 1조3929억 달러까지 성장했다. 올해 2016년도는 1조4500억 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IMF는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기준으로 2008년에 비해 한국의 경제규모는 약 1.4배 증가하는 셈이다. 

◆ 대규모 기업집단 되면 바로 ‘대규모 규제’ 붙어

그렇다면 재계는 왜 이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 기준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일까? 결국 논의는 ‘규제’로 귀결된다. 상호출자제한집단 범주에 들어가면서 각종 규제는 즉시 적용된다. 따라서 경제 성장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규제 대상 기업이 더 많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규모 기업집단 정책

현행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게 되면 일단 각종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받는다. 지주 회사를 설립할 수 없으며 상호출자는 물론 신규 순환출자도 금지된다.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를 강화할 경우에도 이를 일정 기간 내에 해소해야 한다. 

또한 국내 계열회사에 대한 채무보증이 불가능하며 금융·보험사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어도 의결권은 행사할 수 없다. 주주의 주식 소유 현황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공개해야 하며 계열사 간의 거래 역시 규제의 대상이 된다. 계열사 거래로 특수 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다소 모호한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제조 등의 위탁을 하면 그 규모에 관계없이 ‘원사업자’로 규정하고, 중소기업으로부터 사업을 따와도 ‘수급사업자’ 지위를 갖지 못한다. 또한 부당한 하도급 대금 결정 등이 적발될 경우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금을 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대규모 기업집단 계열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점포는 ‘준(準) 대규모 점포’로 분류돼 전통시장 등에는 점포를 개설하거나 변경할 때 해당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규정이 까다로워진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월 2회) 규정도 역시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했을 때 그 대상이 된다. 

◆ 전경련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해야”

이 같이 기준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규제 대상 기업집단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은 우리 경제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재계의 의견이다. 특히 해외에는 없는 국내 고유의 규제 제도로 신규 사업 진출이나 M&A 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전경련은 지난해 5월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 대상 범위를 40여개 그룹사로 축소하기 위해 그 기준을 상향조정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8년 ‘자산 5조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했을 당시 적정 기업집단 숫자가 37개 그룹사였던 점을 고려한 수치다. 그러면서 전경련은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에 대해서 대규모 기업집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신석훈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한 현행 사전 규제 방식은 성장하는 청소년에게 어린이  옷을 입혀 놓는 것과 같다”며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기업 집단 지정 기준을 상향하고 장기적으로는 시장 규율 중심의 사후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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