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5 16:05
청나라 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활약을 했던 증국번(曾國藩 오른쪽) 부부의 초상. 그는 중국 역사에서 매우 지혜로운 인물로 꼽힌다.

지난 7월18일 한국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을 통과했다. 모두 8차례, 연속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데서 우리는 겨우 위안을 얻었다. 그 날 최종 예선 경기에서 숙적인 이란에게 홈그라운드 경기임에도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결국 0대1로 패했음에도 말이다.

이란 앞에 나서면 작아지는 한국 축구라는 말이 나온다. 종합 전적에서는 다소 뒤지지만, 최근 경기에서는 이란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다. 싸움에 나서 계속 패배하는 게 연전연패(連戰連敗)다. 이런 전투를 이끄는 장수는 졸장(拙將)일 테고, 그 밑에서 싸움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약졸(弱卒)이다.

중국 청나라에 강력한 장수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이 증국번(曾國藩)이다. 그는 원래 문인 출신의 관료였다. 그러나 태평천국(太平天國)이라는 반란이 도지자 혜성처럼 나타나 후난(湖南) 일대의 군사력을 모아 그를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 밑에 문인 출신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싸움에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깨지고 돌아왔다. 말 그대로 ‘연전연패’의 장수였다. 아울러 모든 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백전필패(百戰必敗)’의 무능력한 지휘관이었다. 증국번은 조정에 이 사람을 파면하는 보고서를 올릴 생각이었다.

‘싸움에만 나서면 반드시 진다’는 내용을 ‘ 屢戰屢敗(누전누패)’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렇게 적어 조정에 올리면 아무래도 내리는 벌이 너무 혹심하리라고 생각한 관료 하나가 글자의 순서를 슬쩍 바꿨다. ‘屢敗屢戰(누패누전)’-. 패할 패, 싸울 전이라는 두 글자의 순서만 바꿨는데 의미는 180도로 전환했다. ‘거듭(屢) 싸움에서 지는데도(敗), 계속(屢) 나가서 싸운다(戰)’는 뜻으로 말이다.

조정은 그런 수사(修辭)의 기교에 속았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아’하고 ‘어’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참하게 깨지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용기 있게 싸운다는데, 그런 장수에게 어찌 가혹한 벌을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그 무능한 장수는 위기를 모면했다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다. 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장수가 그런 자리에 오래 남았을 것이고, 그런 군대를 지닌 청나라는 결국 내부적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테니 말이다.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이란 전에서 졸전(拙戰) 끝에 치욕스런 패배를 당한 한국의 축구는 어디에 해당할까. 중국의 에피소드는 우리 식으로 쓰자면 ‘연전연패’이거나, ‘연패연전’이다. 팩트로 따지자면 ‘연전연패’가 분명하다. 게다가 국가대표팀이 경기 때 보여준 여러 허점과 부실함은 국민들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행여 그를 ‘연패연전’이라면서 가볍게 넘어갈 생각일랑은 말자.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 그것 고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내일은 암울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축구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모습이 실제로는 망가지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연패연전’식 레토릭의 주술(呪術)과 마장(魔障)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이켜 볼 일이다.

 

<한자 풀이>

連(잇닿을 련): 서로 이어진 모습, 또는 잇따라서 일어나는 상황을 표현할 때 쓴다. 연결(連結)이 대표적인 단어. ‘연접(連接)하다’는 단어도 있다. 서로 이어져 있다는 뜻. 부사적인 용법으로 쓸 때 ‘거듭’ ‘잇따라’ 등의 새김이다.

戰(싸움 전): 전쟁(戰爭), 전투(戰鬪), 세계 대전(大戰), 공중전(空中戰) 등의 용례만 봐도 그 쓰임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한자다.

敗(패할 패): 원래는 훼손하거나 망가뜨리는 행위를 일컬었다. 나중에 싸움에서 패한다는 새김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한자다.

屢(거듭 루): ‘누차(屢次)에 걸쳐…’라고 할 때 쓰는 한자. 거듭, 잇따라 등의 새김.

拙(옹졸할 졸): 시원스럽게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속이 좁아 대범치 못한 사람, 그래서 안목까지 없는 사람(또는 그런 상태)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순수하고 티가 없는 질박(質朴)함을 일컬을 때도 쓴다. 대부분 부정적이지만, 질박함을 나타낼 때는 ‘수졸(守拙)’이라고 적어 ‘원래의 자연스러움을 지키는 사람’의 매우 긍정적인 단어도 낳았다.

將(장수 장): 위 글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장군, 장수의 뜻으로 적었다.

 

<중국어&성어>

打仗 dǎ zhàng: 중국어에서 ‘打’의 용법은 퍽 많다. 대표적인 것은 ‘~을(를) 하다’, 즉 영어에서의 do와 같은 용법이다. 뒤의 ‘仗(장)’은 한자어 의장대(儀仗隊)에서 쓰이는 글자로, 보통은 병장기(兵仗器)를 뜻한다. 나중에 ‘전쟁’이라는 의미를 얻었다. 따라서 중국어에서 ‘打仗’이라고 하면 ‘전쟁을 하다’ ‘작전(作戰)’의 의미다. 패전(敗戰)을 그래서 ‘打敗仗’이라고 적는다. 그 반대는 ‘打勝仗’이다.

 

屢戰屢敗(屡战屡败) lǚ zhàn lǚ bài: 싸울 때마다 지는 경우다. 우리가 잘 쓰는 연전연패(連戰連敗)와 같은 성어다.

 

輸(输) shū: 수출과 수입이라는 단어에 쓰는 글자. 원래는 물자가 어느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빠져 나가는 일을 지칭한다. 나중에 얻은 의미가 전쟁이나 다툼 등에서 패한다는 뜻. 우리는 잘 쓰지 않지만 중국어에서는 ‘다툼이나 경쟁, 전쟁 등에서 지다’라는 의미로 아주 많이 쓰인다.

 

贏(赢) yíng: 우리 한자 독음으로는 ‘영’이다. 이윤을 남긴다, 이득을 얻다라는 게 원래의 뜻. 나중에 ‘전쟁 등에서 승리하다’의 뜻을 얻었다. 중국어에서는 ‘승리’라는 뜻으로 아주 많이 쓰인다. ‘打贏’이라고 적으면 ‘이기다’의 뜻이다.

 

强將之下無弱兵 强将之下无弱兵 qiáng jiàng zhī xià wú ruò bīng 훌륭한 장수 밑에 무능한 병사는 없다는 뜻이다. 자주 쓰이는 성어다. 리더가 훌륭하면 그 밑의 부하들도 자연스레 열심히 제 기능을 갈고 닦아 뛰어난 전력을 갖춘다는 말이다. 리더의 몫이 아주 크다는 얘기인데, 어찌 보면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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