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5 16:14
6.25전쟁 중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 홀로 나앉은 고아의 모습이다. 전쟁은 곧 동란(動亂)이다. 아주 많은 헤어짐이 생기면서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돋는다. <미국 NARA>

오늘이 6.25전쟁 발발 63주년이다. 아울러 1953년 체결한 정전협정(7월27일) 60주년의 해다. 우리는 당시의 전쟁을 평범하게 부르지 않는다. 김일성 군대의 남침으로 인해 발생한 거대한 소용돌이라는 의미에서 그를 ‘동란(動亂)’ 혹은 ‘사변(事變)’으로 부른다.

이번 글의 주제는 ‘란(亂)’이라는 글자다. 원래는 아래 위의 두 손이 받침대에 있는 실(絲)을 만지고 있는 형상이라는 설명이 있다. 어쨌거나 이 글자는 ‘엉크러짐’이 기본적인 뜻이었고, 이에 따라 ‘혼란(混亂)’,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 등을 가리키는 명사, 또 sex 등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事)에 빠져드는 음란(淫亂)함의 새김도 얻었다.

아쉽게도 ‘동란(動亂)’이라는 단어 조합의 출처는 분명치 않다. 보통 ‘亂(란)’이라는 글자 앞에는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끌어들인 원인을 적는 게 보통이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면 전란(戰亂), 역시 군사적인 움직임이 원인이면 병란(兵亂), 왜적들이 일으켰다고 해서 왜란(倭亂), 오랑캐가 쳐들어왔대서 호란(胡亂) 등이다. 따라서 ‘동란(動亂)’의 단어 조합은 썩 좋은 경우가 아니다.

일본식 단어 조합이라고 보이는데, 그럼에도 이 단어는 ‘전쟁이 일으킨 거대한 혼란’이라는 말로 정착한 지 오래다. 이 ‘亂(란)’이라는 글자는 현대 우리말 속에서도 응용의 빈도가 높은 편이다. 검찰이 풍파를 일으킨다고 해서 검란(檢亂)으로 적고, 외환위기가 초래한 상황을 환란(換亂)이라고 표기한다.

마구 두드리는 퍼포먼스로 꽤 인기를 끈 작품이 난타(亂打)다. 말썽, 즉 소요(騷擾)를 일으켜 어지러운 상황으로 번지면 소란(騷亂) 또는 요란(擾亂)이다. 우리는 ‘소(요)란을 떤다’면서 이런 행위를 비난한다. 분파적 행동을 일삼아 평지풍파(平地風波)를 일으키면 분란(紛亂)이다. 이 모두가 두서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또는 제 목적만을 달성하려 벌이는 ‘난동(亂動)’에 해당한다.

난동의 반대는 뭘까.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인데, 우리가 사람인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면서도 평온함을 이어가는 일이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한자 단어로서 난동의 반대는 율동(律動)이다. 이는 일정한 박자와 멜로디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다. 아울러 가시적이며 투명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율조(律調)에 따라 일을 벌이고 수습하는 방식이다.

우리 사회는 늘 시끄럽다. 바람 잘 날이 별로 없는 요란하고 분란한 사회다. 어지러이 나대는 난동이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사회다. 가끔씩 질서정연한 율동의 모습도 보고 싶지만, 그게 여의치가 않다. 국정원 댓글,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으로 한국 사회가 다시 한 번 요동을 친다. 그 풍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또 무더운 여름이다.

 

<한자 풀이>

亂(어지러울 란): 마구 섞여 들어 어지러운 게 혼란(混亂)이다.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 시끄러워 어지러우면 소란(騷亂), 요란(擾亂)이다. 전쟁 등이 일으킨 상황이라는 의미도 있다. ‘전란(戰亂)이 발생하다’, 또는 ‘난(亂)이 벌어지다’ 등의 표현도 있다. 음란하다는 새김도 얻었다. 그리고 인륜을 벗어나면 ‘난륜(亂倫)’이라고 적는다.

擾(시끄러울 요): ‘소요(騷擾)가 벌어지다’ ‘요란(擾亂)하다’ 등으로 쓰인다.

騷(떠들 소): 위의 ‘요’와 새김이 비슷하다. 떠들거나,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징징대는 경우에도 이 글자를 쓴다. 말 많은 문인(文人)들을 부를 때 ‘소객(騷客)’이라고 썼다. ‘소란(騷亂)스럽다’는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다.

淫(음란할 음): 색을 밝히는 경우다. 음란(淫亂)이 대표적 용례. 아울러 욕심스럽게 무언가를 탐내는 경우에도 이 글자를 쓴다. 탐음(貪淫)이라는 단어도 있다. ‘간사하다’는 뜻도 있다.

 

<중국어&성어>

亂講(乱讲) luàn jiǎng:아주 자주 쓰는 말이다. ‘쓸 데 없는 말을 하다’가 본뜻이지만, 그런 내용 자체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헛소리’ ‘쓸 데 없는 소리’ 등의 뜻이다.

亂(乱)七八糟 luàn qī bā zāo: 아주 어지러운 상태, 엉망진창 등의 뜻. 자주 쓰는 말이다. ‘糟(조)’는 원래 술지개미, 즉 술을 담근 뒤 생겨나는 찌꺼기를 가리키는 단어다. 조강지처(糟糠之妻)에 등장하는 글자. 중국어에서는 ‘엉망진창’ ‘엉터리’ ‘(일 등이) 틀려먹은 상태’ 등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騷擾(骚扰) sāo rǎo: 무슨 동작을 벌여 남에게 피해 등을 가져다주는 행위. 요즘 중국에서 자주 쓰는 말이 ‘性騷擾 xìng sāo rǎo’이다. ‘성추행’을 가리키는 sexual harassment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는 자주 벌어지는 사건이다.

世上本無(无)事,庸人自擾(扰)之 shì shàng běn wú shì,yōng rén zì rǎo zhī: ‘세상에 원래 없는 일, 할 일 없는 (평범한)사람이 쓸 데 없이 떠든다’라는 뜻이다. 제법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러쿵저러쿵 말만 앞세우며 일을 부풀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庸人은 평범한 사람, 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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