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특별취재팀
  • 입력 2016.01.18 13:51

중국은 너무 오래 생각한다. 그 생각의 큰 흐름은 ‘셈(算)’이다. 우리는 그 점을 ‘전략’으로도 표현한다.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사실은 ‘모략(謀略)’이다. 1978년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틀을 도입하면서 시작한 중국의 부상은 놀랍다. 외부세계의 투자를 바탕으로 이룩한 막대한 외환보유고, 그를 근간으로 이룬 급격한 국방력, 그리고 용의주도한 대외 정책 등은 모두 중국의 노련한 전략, 나아가 모략의 전통 위에서 가능했다.

모략의 자충수인가

그러나 전략과 모략이 합리적인 지향을 상실할 때는 스스로 스텝이 꼬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선택과 집중에 의한 성장 일변도의 정책지향은 이제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창고’로 전락시킬 가능성을 보인다.

우직할 정도의 급격한 국방력 강화는 미국과 일본, 나아가 전 세계의 우려를 촉발했다. 세계 자원의 50% 이상이 통과하는 남중국해에 자국 영토로부터 1000㎞ 이상 떨어진 산호초 인공섬을 만든 뒤 “이 곳은 내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자국 중심의 사고는 이웃들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급기야 같은 언어권인 대만에 중국과의 연대를 부정하는 민진당이 집권당으로 등장했다.

미일의 동맹은 그런 중국을 가만 두지 않을 참이다.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군사적 동맹을 강화하면서 중국을 압박할 조짐이다. 이제 중국의 화려한 부상의 시기는 지나고 있다. 중국이 불러들인 여러 모습의 우려 때문이다. 이 즈음에 중국이 지닌 전략과 모략의 단점을 제대로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G2 중국의 세계를 향한 시야와 전략에 작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 공장에서 세계 창고로 바뀐 중국

중국은 1949년 공산당이 정권을 쟁취한 이후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큰 틀은 국가주도형 계획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90년대이후 국가주도형 산업육성책은 우선순위에 따라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 내수를 진작하고 수출 활로를 낮은 가격으로 개척, 세계시장을 독식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산업육성책은 ▲내수소비가 많은 전략 물품 공장유치 ▲중국내 기술이전 및 습득 ▲값싼 인건비 동원 대량생산 ▲저가 수출 의 패턴이다. 기술격차를 따라잡고 인민을 동원해 값싸게 전세계 시장에 공산품을 납품한다는 것이었다.

대량 생산체제 전환은 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공적이었다. 백색가전과 굴착기가 대표적 사례다. 낮은 수준의 기술력으로 품질경쟁을 할 수 있는 품목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철강‧ 반도체‧ 조선 등으로 산업의 범위가 급속히 팽창되면서 이미 중국내 소비량을 넘어서는 공급과잉 품목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공급과잉은 경쟁국 제품의 가격하락은 물론 중국내 기업의 도산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철강이다.

값싼 중국산 제품의 범람은 비(非)중국 기업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미국 2위 철강 생산 기업인 US스틸은 최근 1년간(2014년 11월~2015년 11월말)주가가 70% 가까이 폭락했고 지난 2014년에는 북미 지역 직원 3000명을 해고했다. 영국 최대 철강사로 유럽에서 둘째로 큰 레드카 제철소도 지난해 11월 부채 상환 압박을 견디다 못해 폐업을 신청했다. 중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60년 역사의 중국 최대 제철 공장인 판청강(攀成鋼)이 지난해 9월 파산한 데 이어 10월에는 중국 2위 민영 철강 기업인 하이신강철이 경영 적자에 따른 부채 상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세계 창고로 변화한 중국 경제는 중국의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뿐만아니라 연초부터 전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경기둔화’라는 숙제를 떠넘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 산업의 대책 없는 공급과잉 때문이다’

<사진제공=하이투자증권>

미‧일 동맹 역풍 맞는 中외교
미국과 일본의 느슨했던 동맹의 줄이 아주 팽팽해지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 ‘아시아 회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켜왔던 헌법을 수정할 태세다. 재무장(再武裝)이 가능한 헌법 수정 움직임이다.

그로써 동북아의 판도, 나아가 세계적인 전략판은 급변의 조짐을 맞이하고 있다. 그 단초는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의 부상이 조용했다면 미국과 일본은 이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개방이 자리를 잡을 무렵이었던 1980년대 이후 두 자리 수의 국방력 증진을 꾀해왔다. 몸집에 걸맞은 국방력 강화라고 대부분은 인정하지만, 문제는 그 속도와 질량이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중국이 군사대국화하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미국 조야(朝野)의 우려가 깊어졌고, 중국과 직접 아시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일본의 불안은 급속히 가시화했다. 한국 또한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의 틀과 새로 부상한 중국과의 관계 심화 속에서 갈등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미국과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이제는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속에 들어 있는 많은 나라들 또한 마찬가지다. 중국이 제 몸집을 급속히 불리면서 자초한 현상이다.

中과 거리두는 대만의 TPP 정책

대만 총통 선거에서 당선된 차이잉원 당선인이 “당선되면 곧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무역시스템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어 TPP가 재조명되고 있다. 차이잉원은 “산업경쟁력 제고와 경제성장을 위해 반드시 TPP에 가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엔진이었던 중국이 오히려 대만 경제의 추락을 재촉하고 있다는 불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결국 대만 경제를 중국에 종속시키게 될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우려 등에 힘입어 당선된 차이잉원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카드로 TPP를 활용하려는 것이다.

대만이 TPP에 가입하면 TPP 회원국과의 교역 규모가 전체 교역의 35%를 차지해 현재 대만의 중국(홍콩 포함) 교역 비중인 30%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차이 당선인은 미국 지지를 얻어 TPP 가입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개방’ 방침까지 밝혔다. 결국 대만은 미국·일본의 경제 우산 아래 다시 들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다 대만은 그동안 중국 눈치를 보며 미뤘던 동남아, 중남미 국가들과의 FTA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만의 이같은 노선 변화가 동북아 정세에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TPP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무역 질서를 주도,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항하면서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TPP는 글로벌 무역 시장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노리는 미국과 일본 VS 중국의 패권 경쟁 구도인 셈이다. 따라서 대만의 TPP 참여는 미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거리 두기’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 그만큼 중국으로서는 부담을 안게 된다.

새 대만 정부가 미국·일본과 지나치게 유착될 경우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겠지만 당장 차이 당선인으로서는 중국 경기 둔화로 인해 지난해 3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악화된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일단 TPP 카드를 통해 ‘탈 중국·친 미·일’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 정책 수정시 中경제부담 가중

대만의 민진당 집권은 양안간 경제협력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마잉주의 국민당 정권은 지난 8년간 집권하면서 대만 경제를 중국에 예속시켜버렸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국민당 정부는 지난 2008년 민진당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으면서 대내적으로는 성장통 및 구 집권세력의 부패문제,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파의 부담까지 떠안았다. 마잉주 총통은 초고속 성장중인 중국과의 경제교류 및 합작에서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찾았다. 공약대로 대륙과의 3통(통상, 통항, 통신)을 열었으며 정치를 제외한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양안경제기본협정(ECFA) 등 23개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양안교류의 급격한 양적팽창으로 이어졌다. 현재 양안간 교역규모는 2000억달러를 넘었다. 대만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42%로 치솟았다. 중국에 진출한 타이상(대만기업)도 150만개에 달했다. 중국 공산당의 선경촉통(先經促統)과 국민당의 선경후정(先經後政)이 타협한 결과였다.

그러나 대만입장에서 양안교류의 낙수효과는 기대이하였다. 중국이 이익을 거의 다 챙기고 대만에서는 일부 대기업과 관광업계 등만 이득을 봤을 뿐이라는 불만이다. 대다수 대만인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 앞에서 구경만 했고 민생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생산기지의 중국행과 여유자본의 중국행으로 대만 자체의 산업구조 개편이나 고도화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커졌다.

이같은 대만경제의 대륙경도 현상은 청년층과 중산층, 중소기업 등의 불만으로 확산됐고 이번 총통선거의 결정적 이슈가 됐다는 분석이다.

차이잉원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강경한 대만독립 노선 등으로 패배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를 반면교사삼아 이번 선거에는 대만독립과 관련 ‘현상유지’란 입장을 걸어 정치문제는 축소했다. 반면 절대다수 대만인들이 관심갖는 경제와 분배문제, 국내정치 등을 선거운동의 초점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차이 당선자의 공약인 대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를 통해 대만의 경제축을 대륙경도에서 미국, 일본과 함께 동남아권으로 빠르게 다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G2가 된 중국으로서는 대만의 경제축 이동이 당장 큰 타격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외국인투자자본 비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만 자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중국경제는 당황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한해만 약 6000억달러의 외자가 이탈하는 등 20여년만에 자본순유출 상황이 나타났다. 경제성장마저 6%대로 주저앉는 상황에서 외자의 주포중 하나인 대만자본이 움직이고 대만 제조업의 이탈까지 나타난다면 경제적 딜레마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의 국제관계학부 딩홍빈 교수는 최근 한 중화권매체 인터뷰에서 “국민당 집권 8년동안 양안경제교류는 급속히 발전했지만 대만의 이익은 너무 적은 반면 중국이 이익을 다가져갔다는 불만이 팽배해졌다”며 “차이잉원 당선자는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역할분담을 중시하는 등 국민당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있어 양안 경제관계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