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1.19 10:41
1910년 경에 촬영한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삼군부 솟을대문 전경. 조선시대 군무(軍務)를 총괄하던 기관이 삼군부다. 서울역 인근의 남영 또한 조선의 군대가 주둔하던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지명에 영(營)이라는 글자가 붙으면 군대가 머물렀던 곳을 말한다. 따라서 남영이라고 하면 서울 남쪽의 군대 주둔지였다는 뜻이다. 조선 때 군이 머물렀던 정확한 위치는 지금 찾기 힘들다. 단지 조선 말, 또는 구한말 무렵부터 이곳을 남영으로 불렀던 점은 분명하다.

군이 주둔하는 기지를 직접적으로 군영(軍營)으로 적는다. 영문(營門)이라는 단어도 군대 주둔지를 가리킨다. 군대가 행군 등을 하다가 밤을 보내는 일이 숙영(宿營)이다. 진을 펼치고 있는 군대를 우리는 진영(陣營)이라고 부른다. 원문(轅門)도 군대의 정문이다. 전쟁터에 끌고 다니는 수레인 轅(원)을 주둔지에 세워 문으로 삼았던 데서 나왔다.

營(영)은 원래 무엇인가를 둘러싸서 건물 등을 짓는 작업을 가리켰다. 나중에 군사적 의미로 발전해 막사 등을 지어 주둔하는 모습의 의미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건축 용어에 영조(營造)라는 말이 있다. 집 등을 지을 때 쓰는 말이다. 직접적으로는 ‘~을(를) 짓다’라는 새김이다. 거꾸로 뒤집어서 표현하면 조영(造營)이다. 역시 같은 뜻이다.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짓는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꾸미고 계획해 일을 도모하는 행위의 경우에도 이 글자를 쓴다. 이익을 얻으려는 게 영리(營利), 기업을 이끌고 가는 일이 경영(經營)이다. 기업 등이 아니라도 무엇인가를 이끌고 가는 일이 운영(運營)이다. 아무튼 쓰임새가 적지 않은 글자다.

우리의 관심은 우선 군대의 주둔지에 있다.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군대 주둔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細柳營(세류영)이다. 가느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있는 곳?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래 앞의 두 글자, ‘細柳(세류)’는 여기서 지명이다. 그곳에 가지 가느다란 버드나무가 많아 바람에 흔들리며 낭만적인 모습을 연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의 수도는 지금 중국의 셴양이다. 한자로는 咸陽으로 적고,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는 함양으로 읽는다. 그곳 인근의 지명 중에 이 ‘細柳(세류)’가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중국 서한(西漢) 때 유명한 장수 周亞夫(주아부)라는 인물이 주둔했다. 그가 이끌었던 군문의 이름이 細柳營(세류영)이다.

당시 서한 왕조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북방의 흉노였다. 늘 남쪽의 서한을 침략해 약탈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에 분주했다. 황제는 문제(文帝)였고, 그 서한의 수도 주변을 지키는 부대 중의 하나가 세류영이었다.

황제는 어느 날 시찰에 나섰다. 覇上(패상)과 棘門(극문), 그리고 細柳營(세류영)에 주둔 중인 군대를 방문하기로 했다. 황제의 일행은 覇上(패상)과 棘門(극문)을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던 황제의 어가(御駕) 행렬을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細柳營(세류영)에서는 달랐다.

황제 행렬의 호위대가 먼저 도착했다. 細柳營(세류영)의 입구에는 갑옷을 걸치고 칼과 활로 무장한 무사들이 서 있었다. “황제 행렬이 곧 도착하니 길을 열라”고 했으나 장병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옥신각신하는 일이 벌어졌을 게다. 그러나 역시 안 통했다. 그럼에도 문을 지키고 섰던 초병들은 “군문에서는 장군의 명령만 받든다”며 막무가내였다.

이어 황제가 도착했다. 역시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영문 앞의 장병들은 역시 태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제 일행이 장수에게 통첩을 보내서야 비로소 길을 열어줬다. 그러면서도 “규율에 따라 영내에서는 말을 빨리 달릴 수 없다”고 했다. 황제가 기분 좋을 리 없었을 터.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조심스레, 천천히 말을 움직여 도착한 뒤에도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장수 周亞夫(주아부)는 완전히 무장을 한 채 무릎도 꿇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는 무장을 풀지 않고, 황제가 오시더라도 무릎을 꿇지 않으니 이해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좋으면 문제는 훌륭한 황제, 그렇지 않으면 큰 국면을 관리하지 못하는 용렬한 황제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황제였다.

그는 우선 기분이 좋았다. 周亞夫(주아부)가 명장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은 국가를 지키는 초석이다. 따라서 제 아무리 높은 신분의 사람이 오더라도 군영 안에서는 군의 규율, 군율(軍律)을 지켜야 한다. 그런 군대는 반드시 적을 보면 나가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장면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았으니 문제도 괜찮은 황제이리라. 그는 周亞夫(주아부)를 “진짜 장군(眞將軍)”이라고 불렀다.

임금의 명령은 하늘과도 같다. 정말 그럴까. 그게 안 통하는 곳이 군문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지은 孫子(손자)는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 군사철학의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가 그랬다. “전쟁을 치르는 장수는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將在外, 君命有所不受)”고 말이다. 周亞夫(주아부)는 孫子(손자)의 그 훌륭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행한 장수다. 나라의 군대는 그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細柳營(세류영)’은 ‘제대로 준비를 마친 군대’ ‘훌륭한 군대’의 대명사로 변했다. 군대를 키우면서 가꾸고, 그들의 의지를 북돋우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우리의 대한민국 군대는 어떤 모습일까. 늘 생각하는 대목이다. 그나저나 남영 일대는 어쨌거나 군사적인 기운과 관련이 깊은 곳인가 보다.

조선 말, 또는 구한말에 이미 이곳이 수도 서울을 수호하는 군대의 주둔지였고, 이어 한국을 식민 통치한 일본의 연대가 주둔했던 곳이 바로 남영 인근의 용산이다. 이제는 6·25전쟁 뒤 한국에 주둔하는 미 8군의 캠프로 변했다. 곧 평택 기지로 옮겨갈 예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 육군본부가 있던 자리는 이제 전쟁기념관으로 변해 군사적인 감성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부른다. 그 건너편에는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 국방부 건물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있다. 중국인이 스스로 만들어 사용했던 ‘細柳營(세류영)’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국방부에 늘 그런 기대를 걸어본다. 권력의 흐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엄격한 규율로 훈련을 거듭하다 유사시에 적을 맞아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싸우는 그런 군대 말이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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