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1.21 16:59

유대계 미국인인 버니 샌더스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 시절 ‘청년사회운동’ 회원으로서 인권운동을 비롯한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베트남전 반대 평화운동, 인종차별 철폐 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등에 참여하면서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를 표방해왔다.

1972년 첫 번째로 출마한 상원의원 선거에서 2.2%의 득표율로 낙선한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민주·공화 양당 체제에 반감을 느껴온 그는 무소속으로 당시 4명이 박빙의 선거를 치른 벌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단 10표 차이로 당선됐다. 남북전쟁 이후 100여 년간 공화당만 지지해온, 미국 내에서 가장 보수 성향이 강했던 버몬트 주에서 공화당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당선된 그는 자신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벌링턴 시에 전파시켰다. 가령 벌링턴시의 가장 큰 마트도 시민들의 공동 소유로 운영될 정도다. 이후 시장에 3번 더 당선된 것을 비롯해 연방 하원의원 8선, 연방 상원의원 2선을 역임한 정치거물로 커나가게 된다.

샌더스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체제와 거리를 둔 무소속 정치인으로 일관되게 중산층과 빈곤층, 노동 계층, 소수자들을 대변해 왔고 거대 자본과 과두제 정치 구조를 비판해와 미국 정치계의 아웃사이더로 불려 왔다. 자신을 민주당도 공화당도 아닌 북유럽 경제 모델을 추구하는 무소속이자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표현해 온 그는 1991년 원내 ‘진보회의’를 설립해 이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지난 2010년 12월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타협으로 부시 시대 세금 정책이었던 이른바 ‘부자 감세’ 연장 법안이 상정되자 장장 8시간 반 동안 상원 연설을 통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이 연설이 끝난 후 수백명의 새로운 지지자들이 그를 대선후보로 지명하자는 청원을 올렸다.

정계 입문 이후 내내 무소속을 고집해온 그가 돌연 민주당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게 된 것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보수적 성향을 깨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정치회고록이자 자서전인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원더박스 펴냄)에서 “지금은 소박한 꿈을 꿀때가 아닙니다. 이 나라엔 정치혁명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구조에서 하위를 차지하는 이들이 정치 참여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정치 혁명’이라고 역설하면서 나날이 지지자들을 불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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